
속칭 ‘저가항공사’로 불리는 저비용항공사(LCC)가 출범한 지 어느새 10주년이 됐다. 지난해부터 저비용항공사들이 저유가와 경기 불황을 타고 점유율을 크게 늘리는 등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아시아나항공이 에어부산에 이어 제2의 저비용항공사 ‘서울에어’ 설립 움직임을 본격화하자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24일 아시아나항공(대표 김수천)은 이사회를 열고 저비용항공사 ‘서울에어’를 설립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자본금 규모는 150억원 이상, 최초 출자금은 5억원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인천 기반의 저가항공사 ‘서울에어’의 설립으로 아시아나와 에어부산과의 역할 분담을 통한 네트워크를 보강하고 손익구조를 개선하는 등 항공계열사간 시너지를 확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또한 중단거리 노선 선택의 폭을 넓히고,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함에 따라 소비자들의 편익 증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대형 항공사(FSC)는 저비용 저부가가치 노선을 LCC 회사에 맡기고 고비용 고부가가치 노선에 집중하는 것이 글로벌 트렌드”라며 “서울에어가 출범하면 아시아나항공은 장거리 국제선에 집중하고 서울에어가 단거리 국제선을 공략하는 투트랙 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서울에어 설립을 위해 꾸준히 준비 작업을 거쳐 왔다. 3월 초부터 류광희 부사장을 서울에어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아시아나항공의 전문인력 14명으로 구성된 TF(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TF팀은 초기 회사 설립, 사업면허 및 운항증명 취득, 조직·시스템 구축 등 회사의 기틀을 세우고 아시아나항공으로 복귀할 예정이며, 이후 서울에어는 자체 채용한 인력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서울에어가 설립되면 아시아나항공은 장거리 노선 중심으로 운항하고,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일본·동남아 등의 일부 노선은 서울에어가 맡도록 해 손익구조를 개선하는 효과를 노릴 것으로 전망된다.
◆저비용항공사, 눈부신 성장 거듭
아시아나항공이 에어부산에 이어 두 번째 저비용항공사를 설립하겠다고 나선 것은 최근 저비용항공사 시장의 파이가 눈에 띄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비용항공사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제주기점 국내선 점유율을 55.6%까지 올리는 등 국적항공사 여객수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생소한 용어였던 저비용항공사는 초기의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고 성공적으로 소비자들 사이에 안착했다. 처음에는 안전이 최우선시돼야 할 비행운항에서 저비용항공사가 가지는 이미지는 부정적 일색이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저비용항공사는 안전 사고에 대한 우려를 크게 불식시키면서 우후죽순 늘어나는 상황이다.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 국내 5개 저비용항공사 체제가 정착된 2010년부터 최근 5년간 이들 항공회사가 실어나른 수송객 수는 매년 평균 12%씩 성장해 왔다. 국내 저비용항공업계의 대표선수인 제주항공은 2010년 1575억원, 2011년 2577억원, 2012년 3412억원, 2013년 4323억원, 2014년 5106억원으로 해마다 불황을 잊은 듯한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현재 추세라면 저비용항공사를 이용하는 고객 수는 올해 처음으로 2000만명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누적 탑승객 숫자도 10년 만에 총 1억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저비용항공사가 처음 진출했던 2005년 0.2%에 그쳤던 시장 점유율은 올해 60%대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저비용항공사 시장은 더욱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국에서는 국제선 저비용항공사 비중이 평균 28%를 넘어서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10%를 갓 넘은 상황에 불과하다.
대기업들이 저비용항공사 진출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현재 제주항공은 애경그룹, 진에어는 대한항공의 자회사이며 에어부산은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다.

◆기존 LCC들, “시장 포화” 반발 거세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의 제2의 저비용항공사 설립 움직임이 포착되자, 저비용항공사들은 시장 포화 상태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읍소하고 아시아나항공 측은 시장의 파이가 커질 것이라고 맞서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저비용항공사들은 과열 우려를 이유로 최근 국토교통부에 서울에어 설립을 허용하지 말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나서면서 서울에어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붙었다. 지난 19일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3사는 국토교통부에 아시아나항공의 저비용항공사 설립을 반대한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이들 3사는 건의서에서 “현재 국내 저비용항공사 시장은 포화 상태로 신규 항공사 진입시 경쟁 심화에 따른 수익 악화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의 국제여객 점유율은 올 1월 기준 13.8%로 4년 전보다 4배 가까이 성장했지만, 기존 대형 항공사의 국제항공운수권 독점으로 아직 미약하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해외 LCC의 한국 진출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 3사는 신규 항공운송사업자 허용은 대형 항공사 기득권 보호 측면이 강하며 국적 항공사 간 경쟁과 갈등 심화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특히 저비용항공사의 맏형격인 제주항공은 지난 1월 저비용항공사 출범 10주년을 진단하며 “지난해 연말을 기준으로 대형 항공사가 국내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밑돌지만 진에어와 에어부산 등 자회사를 포함할 경우 시장 지배력은 약 70%까지 늘어난다”며 “형식적으로는 다원화된 시장구조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기존항공사 중심의 시장구조가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적 항공사 7곳(대한항공·아시아나·제주·이스타·티웨이항공·진에어·에어부산) 중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관련회사가 4곳”이라며 “서울에어가 도입된다면 기존 양대 항공사의 시장 점유율은 더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아시아나항공의 ‘숙적’ 대한항공은 섣불리 가타부타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7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은 “서울에어에 대해서는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만 평했다. 현재 대한항공은 저비용항공사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속에서 진에어에 투자를 대폭 늘린다는 계획으로 점유율 확대를 꾀하고 있지만, 아시아나항공이 제2의 저비용항공사 설립을 안착시키고 성공을 거둘 경우 대한항공 역시 같은 길을 뒤따라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들끓는 부산 여론, 주주들도 반발
기존에 아시아나항공이 운행하던 에어부산 주주들은 더욱 구체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서 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 4월부터 제2의 저비용항공사 방침을 밝히면서도 에어부산 주주와 부산 지역사회의 반발이 두드러진 바 있다. 서울에어 설립이 해를 넘긴 것도 미국 샌프란시스코 노선 사고 영향과 에어부산 주주들과의 마찰이 결정적이었다는 평이 많다.
특히 부산시는 부산지역 기업들과 손잡고 에어부산의 성장을 적극 지원해 온 만큼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23일 부산시는 서울에어설립이 에어부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대책 회의를 가졌다. 에어부산의 지분 5.02%를 가지고 있는 부산시는 서울에어가 설립될 경우 김해국제공항을 기반으로 하는 에어부산의 장기적인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시민단체도 서울에어 설립이 에어부산의 국제선 노선 등의 확장성을 막고 결국 동남권 신공항 설립에도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박인호 상임의장은 “노선이 인천공항에 집중돼 있는 마당에 또다시 포화상태인 인천공항에 저비용항공사를 만드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서울에어 설립으로 에어부산이 위축되면 향후 부산 신공항 유치에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우려를 전했다.
부산상공회의소 역시 “에어부산의 대주주인 아시아나항공이 또다시 수도권에 저비용항공사를 설립하는 것은 상도의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에어부산의 주주들은 더욱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있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당혹케 하고 있다. 최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에어부산 김해 사옥 설립과 IPO(기업공개)를 결정하고 주주 설득 작업에 나섰지만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에어부산은 아시아나항공이 46%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나머지(54%)를 부산시와 넥센, 세운철강, 동일홀딩스 등이 나눠 갖고 있다.
주주들은 기업공개가 될 경우 아시아나항공이 50% 이상을 확보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시아나항공의 전횡을 견제하는 데 좀 더 무게를 두겠다는 얘기다.
에어부산의 성공이 서울에어의 설립을 부추긴 감이 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에어부산은 지난 1월 기준 국내선 여객점유율을 11%로 끌어올렸고 승객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5%p 증가했다. 에어부산이 거점으로 삼고 있는 김해국제공항의 전체 이용객 중 35%는 에어부산을 이용, 대한항공의 34%를 능가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05억원으로 1년여 만에 294%나 증가했고 매출액은 3510억원으로 전년 대비 26% 증가,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으로서는 대한항공의 자회사 진에어의 시장지배력 증가와 더불어 에어부산의 성공적인 안착이 서울에어로 눈을 돌리게 했던 요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나 “파이 커질 것”…우려 불식 나서

여기저기서 반대 움직임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적으로 시장 포화 우려에 대해서는 시장의 파이를 더욱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국내 LCC 시장의 진정한 경쟁사는 에어아시아 등 글로벌 LCC들”이라며 “국내 시장 잠식은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값싼 가격과 거대한 규모로 공세를 펼치는 외국 LCC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경쟁력을 갖춘 국내 LCC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LCC 시장이 확대되고 수익성이 높아져 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시장논리로 봐도 당연한 것이고, 국민의 선택권 확대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며 “최근 해외 LCC 사업자가 국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 LCC가 늘어나게 되면 경쟁이 심화되지만 이로 인해 국내 LCC업체의 서비스가 향상 되고 경쟁력이 강화 될 것으로 본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실제 저비용항공사들이 안착하는 과정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굳건한 과점체제가 붕괴되면서 항공시장에도 일종의 가격 파괴 바람이 불어닥쳤고 소비자들이 그 혜택을 입은 기억이 여전히 유효하다.
실제로 2005년 국적 항공사를 이용한 여행객 수는 3561만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는 6018만명을 넘어섰다. 최근의 폭발적인 증가세를 감안하지 않고 연간 평균 성장률로만 따져도 6% 이상의 성장률이 나온다. 이는 저비용항공사 도입 전인 1996~2004년 사이의 연간 여객 수 성장률이 0.75%에 불과했다는 점을 살펴볼 때 천지차이다. 저비용항공사들이 그만큼 더 많은 고객들에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기여했다는 의미다.
아시아나항공은 에어부산 주주 및 부산시와 시민들의 우려도 일축했다. 에어부산 관계자는 “서울에어는 아시아나의 인천공항발 적자노선을 받아 사업을 하기 때문에 에어부산 노선과 겹칠 일이 없다”며 “인천~일본 도야마 등 국내 수요가 많지 않은 노선을 서울에어로 넘겨 전체 적자 폭을 줄이겠다는 구상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에어부산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기우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에어부산 최판호 전무는 “아시아나는 에어부산 설립 당시 자본금을 낸 이후 추가로 투자를 한 적이 없다”며 “에어부산은 지난해 200억 원의 경영흑자를 내는 등 경영적으로 완전히 자립한 상태이기 때문에 애초에 아시아나항공에 기댈 일이 없다”고 밝혔다. 투자를 하지도 않으면서도 현재 잘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투자가 위축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얘기다.
또한 일각에서 기업공개 후 아시아나항공이 에어부산의 지분을 넘길 것이라는 ‘먹튀’ 우려에 대해서도 “김해공항의 저비용항공사 시장에서 에어부산의 점유율이 가장 높고, 에어부산을 매각하는 것은 지금까지 키워온 부산시장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장·단기 전망 엇갈려…정부는 관망중
일단 증권가에서는 대체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서울에어 설립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지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초기에는 인력, 고객 유치로 인해 판관비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나 장기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의 포트폴리오 다각화, 단거리노선 경쟁력 상승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서울에어 설립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다.
서울에어 취항에 따른 저비용 항공사들의 경쟁 심화가 소비자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도 관심거리다. 녹색소비자연대 이주홍 정책국장은 “서울에어가 출범하면 소비자들은 항공사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더 싼 항공권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기본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질 수록 소비자들이 입는 혜택은 커지기 마련이라는 점을 짚은 셈이다.
다만 그는 “하지만 거대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와 경쟁해 살아남을 중소 항공사가 얼마나 될까 싶다”며 장기적으로 중소항공사가 무너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실제로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저비용항공사들의 호황은 유가 하락이 큰 원인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저비용항공사의 효시였던 한성항공, 영남에어 등 중소항공사들이 퇴출되기도 했던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다만 아직까지 정부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다. 정부는 지난 8월 시장과열과 재정적 이유를 들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제2 저비용항공사 설립을 보류하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비용항공사를 설립하려면 초기 수년 동안 영업망 확충과 항공기 도입 등으로 적자를 볼 수밖에 없어 모회사에 재정적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저비용항공사 3사의 건의문이 전달되면서 국토부 관계자는 “별도의 기준에 따라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일 뿐”이라며 이들 3사의 움직임에 특별히 대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상 원론적인 입장에서 검토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