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교통부가 아시아나항공의 히로시마공항 활주로 이탈 사고와 관련해 긴급 보강 훈련지시를 내리자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이하 조종사협회)뿐 아니라 대한항공 노조까지 발끈하고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5일 국토부 운항정책과는 지난 14일 일본 히로시마 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착륙 과정에서 무선설비 ILS와 접촉하고 활주로를 이탈한 사고가 발생한 지 하루 만에 아시아나항공의 특별감사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에 대한 긴급 보강 훈련 지시를 내렸다.
국토부가 내린 지시는 아시아나항공의 전 조종사를 대상으로 시뮬레이션 보강훈련을 실시하라는 내용이다. 이에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이하 대한항공 노조)와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는 “조종사 과실로 비춰질 수 있는 처사”라며 일제히 성명서를 내고 반발에 나섰다.
지난 16일 대한항공 노조는 “이번 지시를 즉시 철회하라”며 성명서를 내고 “국토부의 이번 지시가 조종사의 과실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미리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한항공 노조는 “아직 사고 조사가 진행 중이므로 지시는 사고 조사 후 결과가 명백해진 후 내려져야 한다”며 “이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세계민간항공조종사협회 등으로부터 한국의 항공행정이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대한항공 노조는 지시 내용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대한항공 노조는 “설사 사고의 원인이 조종사의 과실에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전 조종사들을 대상으로 시뮬레이터 보강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전형적인 보여주기”라며 “사고발생의 근본 원인에 대한 실질적 보완책이 함께 도출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종사협 “전시·졸속 행정…조속히 철회되야”

다음날인 지난 17일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이하 조종사협회)도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토부의 조치를 비판했다.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는 지난 1998년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소속 조종사와 항공기관사 2백여명을 회원으로 창립됐다.
특히 조종사협회는 국토부의 절차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조종사협회는 국토부의 긴급 보강훈련지시에 대해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 Annex 13에 명시돼 있는 ‘사고조사 후 권고사항 생산’의 절차와 기본 취지에 위반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조종사협회에 따르면 ICAO Annex 13에는 우선적으로 국토부는 사고예방을 위한 권고사항을 주 조사기관인 일본 운수안전위원회와의 사전 협의 없이 단독으로 발간할 수 없고, 안전권고도 원인규명이 끝난 다음에 발간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국토부는 이러한 과정 없이 독단적으로 지시를 내렸다는 지적이다.
조종사협회는 “국토부 관계자가 현장에 도착한 다음 날 오전에 국토부가 긴급 보강훈련지시를 내린 것은 졸속·전시행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조종사협회는 이번 사고를 포함한 몇 년 간의 후진적인 사고조사과정·항공정책들로 인해 현재 ICAO Part 3 이사국인 우리나라가 ICAO Part 2 이사국 진출을 추진하는 데 여파가 미치는 것은 물론, 현재의 이사국 위치도 위태로울 수 있다며 우려했다.
조종사협회는 “이번 사고로 인해 조종사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국토교통부의 정책은 조속히 철회 되어야 하며, 오히려 지금까지 국토교통부의 항공정책의 수립과 실천하는 관행들이 ICAO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항공선진국가로 발전하는 데 방해요소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평했다.
조종사협회 관계자는 이날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조종사 권익을 위해 이번 성명서를 발표하게 됐다”며 발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항공기의 사고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일어나며 조종사의 과실 가능성 뿐 아니라 기체 결함, 기상 상태, 활주로 접근 방법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국토부가 사고 발생 다음 날 보강 훈련을 지시하는 것은 조종사의 과실이 원인인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관련 법령 상에 의해 조종사들의 비행 시간 등을 규제받고 있는 항공사들 역시 정해져 있는 스케줄을 변동해야 하고, 훈련 시간 동안 조종사들이 비행을 할 수 없어 손해를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