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유가 여파에 따른 업황 부진으로 조선업계가 나란히 불황을 겪고 있는 가운데, ‘빅3’ 중 하나인 삼성중공업이 하도급 업체에 부당한 단가 인하를 강요했다는 ‘갑질’ 논란에 휘말려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1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선박 내 시설물을 제작하는 욱일기업이 공사를 하청업체에 맡기면서 수 억원에 달하는 대금을 일방적으로 깎은 혐의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400만원을 부과했다. 욱일기업이 대금을 일방적으로 인하하면서 약속대로 주지 않은 하청 대금은 8억7000만원에 이른다.
그런데 이 욱일기업에게 선박 내 데크하우스를 맡긴 곳이 삼성중공업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삼성중공업이 부당하게 단가를 인하해 욱일기업이 하도급 업체에 떠넘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重 하청업체, 재하청 업체에 단가 인하해 제재
데크하우스는 선박의 주택과 같은 곳으로 선박의 규모에 따라 4~9층의 층수로 이뤄졌다. 제일 윗층은 선박의 주조정실이며, 아래로 내려가면서 선장실, 기관장실, 체육시설 등이 배치되는 공간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앞서 경남 거제에 있는 선박부품업체인 욱일기업은 삼성중공업으로부터 데크하우스 제조를 위탁받은 후 3개 수급사업자들에게 전장·배관·목의장 공사 등을 발주했다가 단가를 일방적으로 인하했다. 그것도 3개 수급사업자들의 작업 내용과 난이도, 작업단가 등이 고려되지 않고 모두 일률적으로 내려갔다.
공정위는 욱일기업이 3개 수급사업자의 작업 내용 및 난이도, 거래 규모, 작업 단가 등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2010년 3월 15%, 2012년 3월 5% 등 일률적인 비율로 하도급단가를 인하한 것이 부당하다고 판단하고 제재조치를 내렸으나, 삼성중공업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발주자의 단가조정, 경영 악화 등을 이유로 수급사업자들에게 일률적으로 단가를 인하하는 관행을 개선시키고 유사한 사례의 재발 방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앞으로 이 같은 관행적 불공정행위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위법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제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욱일기업의 부당 하도급 행위 논란은 지난해 말에도 제기된 바 있다. 지난해 11월 19일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등의 주최로 열린 ‘중소기업 피해사례 발표회’에서 휴먼테크 방정석 대표는 “욱일기업이 선박 47척에 대해 부당하게 대금을 결정하고 감액하고 제작을 위탁하면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방정석 대표는 “욱일업에게 받지 못한 하도급 대금이 6억3500만원에 이른다”며 “20년 넘게 영위해 온 사업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또한 방정석 대표는 “욱일기업과의 기본 계약에는 분명히 선박별 공사에 대해 별도의 정식 계약을 체결한다고 되어 있으나 욱일기업은 2007년부터 2013년 7월까지 ‘쪽지 계약’만을 강요했다”고 설명하고 “‘쪽지 계약서’에는 시공 내역, 공사기간, 검사 방법, 대금지불조건 등이 전혀 명시되지 않고 단가표만 명시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방정석 대표는 2012년 경에는 이런 쪽지 계약마저 작성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더구나 욱일기업은 쪽지 계약서에 항의를 표시하자 수용하지 않을 경우 기성공사대금도 지급하지 않겠다는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고, 쪽지 계약은 2010년에 휴먼테크를 비롯한 하도급업체에게 기존 대비 19%의 하도급대금 감액으로 이어졌는 주장이다. 하도급업자의 책임이 없는 추가 비용을 휴먼테크에 부담시키고, 클레임 정산금액 미반환 등의 횡포도 자행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욱일기업 갑질 원인은 삼성중공업?

그런데 욱일기업을 겨냥한 공정위의 제재 방침이 밝혀지면서 공정위가 “욱일기업이 발주자의 단가 인하를 이유로 들었다”고 밝히자 불똥이 삼성중공업으로 튀었다. 욱일기업에게 선박 데크하우스를 발주한 곳이 삼성중공업이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욱일기업의 하도급 대금 인하를 규율한 근거로 내세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4조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금지’ 2항 1호를 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일률적인 비율로 단가를 인하하여 하도급대금을 결정하는 행위”를 부당한 하도급 대금의 결정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욱일기업이 3개 수급사업자들의 단가를 두 차례에 걸쳐 일률적·일방적으로 인하한 행위는 충분히 ‘갑질’이라 불릴 만한 위법행위다.
그런데 욱일기업의 단가 인하가 삼성중공업의 단가 인하로부터 촉발됐다는 점이 주목을 끌고 있다. 욱일기업으로서는 거대 조선업체인 삼성중공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실제로 욱일기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촉발된 조선업황의 부진 때문에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와 있는 욱일기업의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2005년부터 꾸준히 흑자를 기록하던 욱일기업은 2012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특히 2008년 기록했던 25억여원의 당기순이익은 2009년 16억여원, 2010년 10억여원, 2011년 2억여원으로 해마다 줄어들더니 급기야 2012년에는 14억여원 적자로 돌아섰다. 2013년 1억3403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적자폭을 줄였지만, 지난해 다시 27억원이 넘는 당기순손실로 적자폭이 대폭 늘었다.
이같은 실적 악화 흐름은 삼성중공업의 부진과도 궤를 함께 한다. 삼성중공업은 2012년 수주량이 크게 줄면서 영업이익도 비슷하게 감소했고, 2013년은 수주량이 3배 이상 증가했음에도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지난해에는 삼성중공업 전체의 영업이익이 2013년의 5분의 1에 불과한 1830억원을 기록, 2013년보다 80%나 급감하는 ‘어닝쇼크’를 기록하기도 했다.
삼성중공업의 영업이익 급감은 조선업계가 불황기에 살아남기 위해 몰두하고 있는 ‘저가 수주’ 경쟁과 해양 플랜트 손실 등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삼성중공업이 저가 수주에 따라 감소하는 영업이익을 하도급 업체에 전가하자 이 여파가 2차, 3차 하도급 업체로 이어지며 ‘욱일기업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관계자는 “저가수주는 협력업체의 납품단가 인하 압박으로 고스란히 이어지면서 업계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더구나 발주사들의 입김이 세지면 업계에서 살아남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조선업계가 중국의 추격과 일본의 부활에 대비하려면 최소한의 ‘상도’를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생 외치던 박대영 사장, 따가운 시선 어쩌나
실제로 욱일기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공정위에서 제재를 받은 내용이 삼성중공업의 부당한 단가 인하 요구에 따른 것이냐는 질문에 “보도된 내용이 전부고 곤란한 입장이라 더 할 말이 없다”며 “발주처와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내용을 듣기 위해 욱일기업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욱일기업 담당자는 “죄송하다”는 답변과 함께 바로 전화를 끊는 등 언론과의 인터뷰를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삼성중공업의 ‘갑질 유발’ 의혹은 최근 ‘갑질’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대기업들이 잇따라 협력사와의 상생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따가운 시선을 낳고 있다.
지난 2013년 취임한 삼성중공업 대표 박대영 사장은 지난 2013년 ‘감사 나눔’ 선포식을 개최하고 매일 5가지에 감사하기, 감사문자·카드 발송 등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감사 인사를 서로 나누자는 운동을 주도해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특히 당시 박대영 사장은 이 감사나눔 활동이 회사 내에서 뿐 아니라 협력사와 지역사회에까지 확대될 수 있도록 활동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또한 협력사들과 동반성장 협약을 체결해 3000억원 규모의 동반성장 펀드를 조성하고 물품 대금 지급 횟수 증대와 조기 지급 등으로 협력회사를 지원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다.
하지만 이번 ‘욱일기업 사태’를 통해 “실적 악화의 책임을 하도급 업체에 전가한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가뜩이나 삼성중공업은 사내 하도급 업체 직원들의 처우가 동종 업계의 하도급 업체 직원들보다도 열악하다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의혹이 불거지자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23일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원래 단가라는 것은 인하되기도 하고 인상되기도 하는 것”이라며 “욱일기업과의 단가 인하는 아무 문제 없이 협의를 통해 잘 이뤄졌다”며 하도급 업체의 갑질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의혹을 반박했다. 다만 그는 “단가 인하의 수준과 내용, 시기 등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공정위 측 역시 삼성중공업에 대해 “단가 인하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협의에 의한 단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욱일기업이 부당하게 일률적으로 단가를 인하 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업계에 칼 빼든 공정위, 관행 개선될까
삼성중공업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공정위는 ‘욱일기업 사태’를 계기로 선박제조업체들에 대한 하도급 대금 지급 행태에 대해 서슬퍼런 칼날을 겨눌 전망이라 삼성중공업에 대한 의혹이 확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19일 공정위는 하도급대금 미지급과 관련한 중소하도급업체들의 주요 불만 대상인 대형 선박제조업체 1차 협력사(10여개)를 대상으로 심층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특히 우선적으로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선박업체의 1차 협력사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한다고 공언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조사과정에서 1차 협력사의 부당행위가 윗 거래단계부터 이뤄진 것으로 확인될 경우에는 상위업체 추적조사도 병행된다.
물론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주로 하도급 대금의 ‘미지급’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돼 있다. 공정위는 현재 일부 1차 협력사의 위반혐의를 포착한 상태로 업체 스스로 신속하게 대금을 지급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정위가 조선업체들의 하도급 관련 행태에 칼을 꺼내들고 ‘현장 조사’를 실시하기로 한 만큼 , 하도급에 대한 수주· 계약·협의 등 전반적인 하도급 실태에 대해서도 살펴볼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는 “특히 선박업종 등 조선업의 장기 침체와 저가 경쟁이 이어지고 해양플랜트 쇼크·발주감소 등 적자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면서 “조선업 장기 침체 등에 따른 실적악화는 하청업체까지 영향을 주는 등 하도급 횡포를 불러 일으킨다”고 밝혔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