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업체들의 TV광고가 가정의 안방을 점령하는 수준에 달한다는 지적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대부업체들의 광고 제한을 놓고 대부업계의 반발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크라우드펀딩법 등 경제활성화법과 함께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명 ‘대부업법’ 개정안이 가결됐다.
대부업법 개정안은 청소년 시청 보호시간대인 평일 오전 7~9시와 오후 1~10시사이에 대부업 광고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위를 통과한 대부업법 개정안은 30일 정무위 전체회의를 통과할 경우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 후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 4월 임시국회 내에 처리되는 절차를 밟게 된다.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 시행에 들어가면 대부업체들은 직장인들의 출근시간대 이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사이, 그리고 늦은 밤인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 사이에만 광고를 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방영시간에 대한 규제가 없어 24시간 내내 대부업체들의 광고가 전파를 탈 수 있다.
당초 이번 대부업법 개정안은 지난 2013년 5월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것이다. 지난 2013년 12월에도 이학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부업 광고를 제한하는 개정안을 발의하기는 했지만, 이학영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대부업의 TV광고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심재철 의원의 개정안은 지난해 상반기 개인정보 유출 관련 법안 논란, 하반기 김영란법 처리 문제 때문에 그간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였다가 이번 정무위 소위에서 가결되면서 본회의 통과를 향한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딛었다.
◆대부업 TV광고, 1분당 1개 꼴로 방송
현재 케이블TV를 중심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부업체들의 광고는 하루 평균 1천건, 시간으로 환산할 경우 1분에 1개 이상의 광고가 전파를 타고 있다. 새누리당 류지영 의원이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케이블TV방송협회로부터 받은 ‘주요 방송사업자의 대부업 광고 현황’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케이블채널에서 방송된 대부업 광고는 모두 75만7812건으로, 하루 평균 1188건의 광고를 내보냈다.
이처럼 대부업체들의 TV광고가 방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강하다. 한국대부금융협회 자료에 따르면 TV광고를 보고 대부업 시장을 이용하게 되는 비중이 2011년 39.9%에서 2012년 48.9%로 커졌다.
따라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대출 수요자들의 자극적인 문구로 도배된 대부업체들의 TV 광고를 보고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산할 수 있다. 빠르고 간단한 대출 절차를 강조하기 위해 ‘3초 만’, ‘누구나’, ‘무상담’ 등의 문구가 수요자들을 오인하게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는 대부업체들의 대출 절차가 광고문구처럼 빠르지도 않고, 대부업체들은 상담 후 대부분 신용등급 하위층에서도 상등급의 대출자를 골라 돈을 빌려주고 있어 거절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대부업 이용자 중 주요 대부업체의 대출 승인률은 20% 초반에 그친다. 자극적인 광고가 텔레비전에서 범람하자, 금융당국은 지난 1월 한국대부금융협회(대부협회)에 광고 심의규정을 강화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개정안 발의의 취지와도 관련돼 있는 청소년들에게 대부업체들의 TV광고가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최근 금융정의연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서울·경기 지역 초등학교 4~6년생 361명 중 80%가 대출광고를 TV를 통해 가장 많이 봤다고 답했다. 초등학생들은 대부업 광고 중 노트북에서 돈이 나오는 장면, 돈을 빌리면서 활짝 웃는 장면, 갑자기 날아와서 돈뭉치를 안겨주는 장면 등이 쉽게 떠오른다고 했다.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자극적이고 기발한 대부업체 광고의 카피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한다.

◆“대부업체 TV광고, 과장 많고 해악 심해”
대부업체의 TV광고를 전면 금지할 것을 주장했던 이학영 의원은 “TV 대부업 광고는 특성상 따라 하기 쉬운 주제곡과 홍보문구 반복으로 아동·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금융 가치관 형성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적지 않다”며 “대부업에 관한 TV 광고를 엄격히 제한해 보다 명확한 정보와 책임 아래에서 금융서비스를 이용하게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학영 의원은 “대부업체를 이용하면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제도권 상위 금융사와의 거래가 차단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부분이 케이블TV 방송 광고에서 제대로 소화되지 않는다”면서 “케이블TV나 버스, 지하철 등에서 대부업 광고를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도 “TV 대부업 광고는 대출이 쉽고 편리하다는 내용을 강조하지만 대부업체를 이용한 사람들에게 어떤 채권추심이 이뤄지는지, 어떤 불이익을 주는지 알리지 않는다”며 “어린이, 청소년이 보는 방송 시간대에는 TV 대출 광고를 제한하고 광고 횟수에도 제한을 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부업체를 함부로 이용하다 보면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은행 같은 상위 제도권 금융사들과의 거래가 막힐 수도 있지만, 광고 속에서 이 같은 사실이 제대로 공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대출 수요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위해 허위·과장에 가까운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것도 문제다.
◆대부업계 “제재 실효성 낮고 위헌 소지 커”
하지만 당사자인 대부업체들과 광고 수입 축소라는 직격탄을 맞게 될 종합편성채널, 케이블TV 방송국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1~9월 케이블TV가 대부업 광고를 통해 벌어들인 매출액은 243억7000만원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규제가 지나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30일 대부협회는 국회의 광고 제한 움직임에 대해 반발, 국내 대형 로펌 3개사로부터 법률자문을 받은 결과 대부업체들의 광고 제한이 위헌 소지가 크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공식 입장을 밝혔다.
대부협회는 이날 “국내 대형 로펌 3개사로부터 ‘헌법상 보장된 언론·출판의 자유와 직업의 자유, 평등권 등 대부업자의 기본권을 심하게 침해해 위헌적 소지가 크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개정안이 어린이, 청소년의 경제관념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실제로 대출광고가 비(非)소비자인 이들의 경제관념을 해친다는 근거가 미약하다”고 주장했다. 즉, 광고의 해악이 입증된 바가 없고 제한의 실효성 여부도 미지수라는 얘기다.
이어 대부협회는 “광고 종류, 대출상품 특성, 매체 특성에 따라 차등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방송광고를 일괄적으로 제한하려는 것은 기본권 제한에 따른 대부업자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은행, 보험, 증권 등도 대출상품을 광고하는데 대부업 광고만을 제한하는 것은 평등하지 않다”며 불평등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명대 최종한 교수 역시 강제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며 “TV 대출 광고에 대한 문화적 저항이 상당하지만 금융정보로서의 가치와 뉴미디어 산업의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인 효용이 있는 만큼 강제 규제보다는 자율규제를 극대화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이창기 대부업협회 광고심의위원은 “빚을 내면 어려울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맞지만 대부업 광고를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은 과잉 규제”라며 “청소년의 눈과 귀를 막는 게 아니라 그들의 판단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교육을 병행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알 권리를 강조하는 주장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TV대출광고가 사회에 유해하기만 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 소비자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인지를 실증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업체들의 TV광고가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이 자금 마련에 대한 정보를 얻을 경로로서 작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