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9재·보선 승리의 기쁨도 잠시, 청와대와 새누리당 간에는 갈등과 함께 냉기류가 다시 형성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처리되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모두 각자의 입장을 하소연하며 팽팽하게 맞서는 형국을 이루고 있어, 혼란의 소용돌이로 말려들어가고 있다.
지난 5월 6일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결국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못하면서 청와대와 새누리당 간의 관계도 급속도로 위태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성완종 리스트’ 파문 및 4·29재·보선을 전후해 형성됐던 당·청 간 ‘협력 모드’가 급속도로 무너지는 상황이다.
◆ 朴 “국민연금 생각하면 한숨만”
지난 5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재차 촉구하고 나섰다. 이날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먼저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한 다음에 국민연금 논의를 하자’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보기 드물었던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며 개혁안 처리 지연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만큼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절체절명의 과제임을 확실하게 강조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빚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외면하면서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려고 한다면 이는 너무나 염치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을 중심으로 한 야권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은 공무원 연금개혁 처리가 지연되는 데 대해 “국민 부담과 나라 살림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그것은 결국 국민의 허리를 휘게 하는 일”이라며 “이는 미래세대에 빚더미를 물려주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 처리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휴…, 이것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와요”라고 말한 뒤 한 10초 정도 침묵했다. 이는 그동안의 박근혜 대통령의 언행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태도다. 박 대통령의 침묵에 국무회의 회의장에서는 깊고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그런 다음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공무원연금 개혁을 마무리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그 뒤에) 국민연금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사회적 논의를 통해 신중하게 결정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물론 이날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기본적으로는 야권을 질타하는 내용으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 하지만 방향을 달리하면, 여당인 새누리당의 일처리 과정에 대한 불만 표시로도 해석될 수 있다.
◆ 金 “가슴 터질 듯 답답”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의 발언에 대해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너무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심기 불편한 의중이 직·간접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5월 13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께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 문제만 생각하면 정말로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다”며 심경을 가감 없이 토로했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개최한 본인이 이끄는 노인복지 정책 모임인 ‘퓨처라이프포럼’에서 공무원 연금 개정안의 4월 중 임시국회 처리 무산과 관련하여 이런 심경을 밝힌 것이다.
이는 듣기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12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과정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고 한데 대해 한발 더 나아가 가슴이 터질듯 답답하다고 맞받아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김무성 대표는 “어찌해서 ‘하나마나 한 맹탕 개혁’ ‘졸속 처리다’ ‘비열한 거래를 했다’는 등, 이런 말로 언론으로부터 매도를 당하고 국민의 비판을 받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 심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김무성 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내용을 갖고 잘 됐는지 잘못됐는지 말해야 한다”며 “그런데 완전히 별개의 문제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가지고 옳냐 그르냐며 이른바 ‘이슈 파이팅’을 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참으로 답답할 따름”이라고 또 한 번 직격탄을 날렸다.
김무성 대표의 이 같은 직설적인 발언에는 야당에 대한 비판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여·야 간 협상에 개입하는 움직음을 보이는 청와대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렇게 김무성 대표가 견지한 격한 입장은 ‘퓨처라이프포럼’이 끝난 직후 국회에서 개최된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도 거의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때에도 김 대표는 사실상 청와대를 겨냥해 불만이 섞인 발언을 거듭 표명했다.
김무성 대표는 연석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이 이뤄지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 정치권은 ‘국민의 뜻을 대변해야 할 국회가 거꾸로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있다’는 거센 비난과 질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 대표는 정부를 향한 불편한 심기도 드러냈다. 김 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하지 못하면 더 많은 세금을 투입하는 부담을 져야 한다”며 정부도 과연 국회에서 여·야 간에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과연 잘못되었는지 잘되었는지를 입장을 (분명히) 밝혀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또한 공무원연금 개혁안 무산을 두고 청와대가 불만을 표시한 데 대해 유감을 드러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김무성 대표의 경우처럼 직설적인 어법까지는 구사하지는 않았지만, 어찌됐든 청와대를 향해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난 5월 12일 유승민 원내대표는 취임 100일을 맞이해 개최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관련해 개정안 처리가 무산된 상황에 대해 상당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 당내 곳곳 불만 표출
이 자리에서 유승민 원내대표는 “지금 당장은 저에게 협상의 재량권이 별로 없다”며 협상 입지가 좁아졌음을 내비쳤다. 이 같은 발언은 공무원연금 개혁안 협상과 관련하여 청와대의 이른바 ‘가이드라인’ 제시 논란에 대해 우회적으로 청와대를 겨냥하고 견해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유승민 원내대표는 간접적 비판을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 원내대표는 “공무원연금법 개정 과정에서 청와대와 당 간 의사소통은 거의 실시간 100%로 이루어졌다”며 “(하지만) 대통령께 얼마나 보고가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고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이런 추지의 발언을 언급한 배경으로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미진함은 물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목표치의 국회 규칙 명기 등을 구실로 청와대는 물론 심지어 일부 친박계 의원이 공무원연금법안 처리에 제동을 건 데 대한 간접적인 비판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처럼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 모두 결국은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불만의 소리를 드높이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 때문에 “4·29재·보선 전후 형성됐던 당·청 간 ‘밀월관계’가 벌써 끝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정계 안팎에서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또한 새누리당 내 소장파·비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도 청와대에 대한 불만의 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청와대가) 어떤 기준점을 제시해 버리니까 유승민 원내대표가 매우 옹색한 처지가 됐다”며 비판했다.
‘청와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바람에 협상 주도권을 빼앗겼다’ 취지의 지적인 것이다.
새누리당 소속 초·재선 의원들의 모임인 ‘아침소리’도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여·야 실무기구의 합의 후 현재까지 진전이 없다”며 “이는 청와대의 반대 의견 표명이 사태 공전의 주된 이유”라고 반발했다.
‘아침소리’ 소속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측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적으로 나서 논의의 물꼬를 터달라”며 “청와대는 원칙과 기준에 의견 표명만 할 것이 아니라 여당과 함께 140만 명의 전·현직 공무원을 설득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이에 대해 한 시사평론가는 “청와대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자신의 기준에 맞게 빠른 시일 내에 현실화하고 싶은 의도가 있는데 새누리당이 이에 따라주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니 직접적인 압박을 취하게 된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새누리당은 또 새누리당 대로 야당과의 ‘합의 절차’를 중시하다보니, 청와대와 충돌하고 갈등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것이 바로 당·청 관계가 불안정해 보이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바로 이런 근본 배경 때문에 이른바 ‘청와대 가이드라인’ 논란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특히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고 있어 정계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지난 5월 12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개최한 원내대책회의에서 “새누리당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불가 입장을 확정했는데 이는 사실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충실한 입장”이라며 “사실상 첫 원내대표 간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새누리당 지도부가 손바닥 뒤집듯 뒤엎었다”고 맹렬하게 비판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국민을 대표하는 여·야 간의 합의가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뒤집히는 게 되풀이 되면 결국 국회는 유명무실해지고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라며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도 “어떤 것은 받고, 어떤 것은 못 받는다는 식으로 분리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며 “약속을 이행하거나 아니면 실무기구 합의 및 양당 대표의 합의를 파기하는 선언을 하라”고 성토했다.
특히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은 “청와대가 (새누리당에게)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라며 “(이에 대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청와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시사포커스 / 문충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