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여름 M&A 시장의 최대어로 꼽히는 동양시멘트 인수전의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쟁쟁한 시멘트·레미콘 대기업들의 각축전 속에서 1000여개가 넘는 중소 레미콘·아스콘 업체들이 손을 잡고 인수전에 뛰어들어 관심을 끌고 있다.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과 매각주간사 삼정KMPG 등에 따르면 이날 동양시멘트 인수전 예비입찰이 마감됐다. 9개 후보 모두 예비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삼정KMPG는 오는 29일 적격후보자(쇼트리스트) 3~4곳을 발표하고 한 달여 간 실사 기회를 부여한 후 내달 22일 본입찰을 진행하고 이틀 뒤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
매각 대상은 ㈜동양이 가지고 있는 동양시멘트 지분 54.96%와 동양인터내셔널이 가지고 있는 동양시멘트 지분 19.09% 등 총 74.05%다.
법원의 방침에 따라 매각 방식은 각기 따로 또는 ㈜동양의 지분 전체만, 또는 ㈜동양의 지분 전부와 동양시멘트 지분 일부(12%)만 등등 다양한 경우의 수로 나뉘어진다. ㈜동양의 지분에 동양인터내셔널 지분 12%만 더하면 주주총회 특별결의요건의 기준인 3분의 2(67%)가 채워진다. 다만 대부분의 후보들은 지분 전부를 사들이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경우라도 주당 인수가격이 가장 높은 회사가 우선협상권을 가지게 된다. 현재 매각 지분의 가치는 6000억원대로 평가받고 있지만, 경영권 프리미엄과 뜨거운 경쟁 구도를 고려하면 8000억원대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이날 예비입찰에 참여한 한 후보는 주당 1만원 수준까지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 가격을 환산하면 8000억원에 육박한다.
이처럼 대기업들도 쉽게 동원하기 힘든 규모의 금액이 예상되는 가운데 인수후보 9개 중 중소업체들로 구성된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컨소시엄(이하 레미콘·아스콘연합회)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날 레미콘협회 관계자는 이날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예비입찰에 참가했다”며 공식적으로 예비입찰에 참가했음을 밝혔다. 두 연합회는 중소업체로 구성된 협동조합의 전국 조직으로 중소기업들이 뭉쳐 대기업 인수에 나선 ‘을들의 반란’이 일어난 셈이다.
◆“좀처럼 나오지 않을 매물”…대기업들 각축전 치열
동양시멘트는 동양그룹 사태의 여파로 시멘트업계 4위에 머물러 있지만 그전까지는 13%대를 유지하며 업계 2~3위를 유지해 오던 기업이다. 지난해 점유율은 12.77%로 해안가 입지를 가지고 있어 수출·물류 등에 이점을 갖고 있어 좀처럼 나오지 않을 알짜 매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따라서 1위를 노리는 시멘트 업계와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는 레미콘 업계는 물론 사모펀드들까지도 동양시멘트 인수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상황이다.
시멘트 업계에서는 상위 7개 회사가 점유율 90%를 장악하고 있는 과점 구조 탓에 1위 쌍용양회의 점유율이 19.8%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동양시멘트를 인수하는 시멘트 회사는 즉시 업계 1위로 도약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해안가 공장이 하나도 없는 업계 2위 한일시멘트는 마찬가지인 업계 7위인 아세아시멘트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지난 25일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강남구 역삼동 소재 본사 사옥을 팔고 임대 계약을 맺는 등 가장 의욕적으로 인수에 나서고 있다. 업계 5위 라파즈한라시멘트도 베어링PEA-글랜우드PE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레미콘 업체들 역시 공급선 확보 등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의욕적으로 인수전에 나서고 있다. 특히 레미콘 업계 2위 삼표는 수직계열화를 위해 산업은행PE와 손을 잡았고, 동양시멘트 재무담당 임원과 전 대표까지 고문으로 영입했다. 1위인 유진기업은 수익성이 높은 시내면세점 입찰과 동양시멘트 인수전의 비율을 50대 50으로 놓고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밖에 쌍용양회 3대 주주인 한앤컴퍼니, 굵직한 M&A건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IMM 등 사모펀드와 탄탄한 재무구조를 자랑하는 중견 건설업체 한림건설, 북미 최대 건설자재업체 CHR도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못 살겠다 바꿔보자”가 ‘을들의 반란’으로
이처럼 국내외 거대 기업들의 각축전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레미콘·아스콘연합회가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참가 자체만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레미콘·아스콘연합회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배경은 간단히 말해 ‘못 살겠다 바꿔보자’로 풀이된다. 그간 시멘트 업체들의 횡포에 시달려온 중소 레미콘·아스콘 업체들이 직접 거대 시멘트 업체를 인수해 생존권을 보장받자는 얘기다.
레미콘업계에는 그간 가격 협상에서 매년 시멘트 업체들과 건설사들 사이에 끼어 이리 저리 치여 왔다는 인식이 가득 차 있다.
지난 16일 건설·레미콘업계 간 상견례로 시작된 협상에서 건설사들의 레미콘 가격 조정폭은 레미콘업계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납품처인 건설업계는 시멘트 인상분을 반영한 레미콘 업계의 가격 인상 요구를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때로는 레미콘 업계의 생산 중단으로까지 이어진다.
레미콘 업체들에 원재료를 독과점적으로 제공하는 시멘트 업계는 레미콘 업계를 상대로 더욱 강력한 협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시멘트 업계는 상위 7개사의 점유율이 90%에 육박하는 기형적인 과점구조 때문에 막강한 단결력을 바탕으로 협상에 힘하고 있다. 한 레미콘 업체 관계자는 “레미콘은 양 업계(시멘트·건설) 사이에 낀 새우 격”이라고 자조섞인 발언을 내놨다.
특히 시멘트 업계의 단결력은 유진기업, 삼표 등 레미콘 업계의 대기업들뿐 아니라 건설사 자재 담당자들의 모임마저도 시멘트 업체들과의 협상에서 애를 먹을 정도다.
일각에서는 레미콘 업체들이 시멘트 업체들에 로비까지 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모든 것은 시멘트 업체들이 레미콘 업체들을 상대로 누리고 있는 막강한 협상력 때문이다. 레미콘·아스콘연합회가 동양시멘트 인수에 나선 것은 결국 ‘살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아울러 시멘트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도 레미콘·아스콘연합회의 인수전 참여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가뜩이나 독과점 구조로 인한 폐해가 지적받고 있는 상황에서 시멘트 업체가 동양시멘트를 인수할 경우 6개사 과점 구조로 바뀌면서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 만만치 않은 지출이 예상되는 만큼 인수 과정에서 발생하는 출혈이 가격에 반영될 여지도 크다. 이 경우에도 중소 레미콘 업체들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꿇릴 것 없다”…자신감 내비쳐
워낙 경쟁 후보들이 쟁쟁한 탓에 레미콘·아스콘연합회의 참여를 두고 “동네 구멍가게들이 연합해 롯데마트를 인수하겠다는 얘기”라며 평가절하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기는 하지만, 레미콘·아스콘연합회는 꿇릴 게 없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도 그간 당하기만 했다는 인식으로 가득찬 중소 업체들이 손을 잡고 대형 이슈에 뛰어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레미콘·아스콘연합회 내부에서도 상당한 활력이 감지되고 있다.
레미콘·아스콘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중소업체들의 자금력이 평가절하되는 부분이 있는 것 다”면서 “충분한 사전조사를 거쳤고 최근 매각된 두산 렉스콘 사업부 공장 5곳도 모두 중소기업에서 인수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른 관계자는 “우리 쪽에는 기자들의 문의조차도 없고 모두들 무시하고 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뭉치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며 “대기업의 횡포에 중소기업이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하나의 사례”라고 평가했다.
레미콘·아스콘연합회 측은 철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선박 운임의 특성상 해안가에 위치한 동양시멘트를 인수하면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초저금리 시대에 접어든 최근 지역의 상위 레미콘 업체들의 투자를 이끌어 낼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형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국내 시멘트 생산량의 80%를 레미콘업체가 사용하는데도 레미콘 업체는 시멘트사들의 횡포에 시달려 왔다”며 참여 이유를 밝혔고, 한 레미콘연합회 관계자는 “중소레미콘사들이 오죽하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시멘트사를 인수하겠다고 나섰겠느냐”면서 “수백 개 기업이 공동으로 인수하더라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갑질의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없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시장은 평가절하 분위기…귀추 주목
반면 대체적으로는 레미콘·아스콘연합회의 참여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일반적으로 대기업들의 돈잔치에서 밀려 쉽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아마 예비입찰에서 탈락하지 않겠느냐”라고 관측했고, 다른 시멘트 업계 관계자 역시 “중소 레미콘사들이 그런 천문학적인 금액을 충당할 수 있겠느냐”고 평가절하했다.
레미콘 업체들 간의 결속이 단단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지역의 레미콘 업체들이 유달리 자존심이 강한 만큼 한 뜻으로 모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다른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자본금 조달도 문제지만 설령 인수하더라도 제각각의 이해관계 탓에 쉽지 않을 것”이고 관측했다. 이를 의식한 듯 레미콘·아스콘연합회 관계자는 “여러 개의 목소리를 한꺼번에 취합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별도 법인을 따로 만들어서 인수전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레미콘연합회 관계자는 이날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이에 대해 “업체들을 대상으로 투자 설명회를 가졌고 취지도 얘기를 했다”면서 “어느 정도 자본이 있는 분들도 꽤 있는데 이 분들이 많이 나서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적게는 1억원에서 많게는 150억원까지 투자하겠다는 분들까지 다양하게 나왔다”며 “설득도 그간 계속 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투자하겠다는 분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처럼 대기업들의 갑질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분명 중소업체들이 힘을 합쳐 갑질의 당사자를 거꾸로 인수하겠다는 움직임은 가능성 여부를 떠나 M&A업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까지는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을들의 반란’이 성공한다면 큰 파장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3일 후 발표될 예비입찰 결과에 또 다른 의미의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