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법 개정안이 6일 정족수 미달로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여야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에 나섰지만 새누리당이 표결에 불참, 정족수가 미달됐다. 게다가 이날 표결에 참여한 의원은 128명밖에 되지 않았다. 정족수인 150명에 크게 못 미친 것이다.
따라서 국회법 개정안은 계속 계류되면서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새누리당이 160석을 점하고 있어 새누리당 소속 의원 대다수가 표결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족수 미달이 될 수밖에 없다.
앞서, 새누리당은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를 열고 표결에 불참한다는 당론을 재확인했다. 다만 본회의가 개의될 수 있도록 일단 입장을 하고 국회법 개정안 상정 시 본회의장을 떠날지 말지 여부는 의원 개인이 각자 판단하도록 했다.
투표가 시작된 뒤 표결 불참 방침을 정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은 대부분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투표에 참석하지 않았고 일부 여당 의원은 본회의장 밖으로 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단상 밑으로 나와 여당 의원들의 투표를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투표 종료를 앞두고 야당 의원들은 피케팅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에 정 의장은 “거진 55분간 투표시간을 드렸지만 투표소 상단 명패수를 보면 재적의원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재적 의원 과반수에 충족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이어 “의결에 필요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미달하기 때문에 이 안건에 대한 투표는 성립되지 않았음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재의가 요구된 법률안은 일반 법률안 표결 때와는 달리 무기명 투표로 진행되며,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가결 처리되는데 여당 의원들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결국 표결 불성립이 됐다.
물론, 새누리당에서도 정두언 의원 등 이탈표가 나왔다. 정 의원은 본회의에 앞서 보도자료를 통해 표결 참석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정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헌법 제53조 4항은 대통령의 재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회는 재의에 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표결이 성립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헌법에 반하는 행위라 하겠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이어 “따라서 저는 표결에 임하여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위헌이라는 평소의 소신대로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법 개정안이 폐기되면서 당청갈등을 촉발시켰던 ‘거부권 정국’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거부권 정국에서 비롯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거취 논란은 이날을 기점으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표결에 앞서 황교안 국무총리는 정부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에 대해 “그대로 시행된다면 집행과정에서 많은 혼란과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 총리는 “법률은 의미와 내용이 분명히 알고 따를 수 있도록 최대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며 “국회법 개정안은 행정입법의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정부가 수정 요청을 받은 내용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지, 독자적 판단할 수 있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황 총리는 이어 “국회 상임위가 요청한 내용대로 행정입법을 수정·변경해야 한다면 정부의 수정 입법권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크다”면서 “‘요구’를 ‘요청’으로 수정하면서 정부는 요청 받은 그대로 수정 변경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될 가능성 높다”고 강조했다.
황 총리는 또 “국회법과 같이 상임위가 요청한 내용대로 정부가 수정·변경을 한다면 헌법이 법원에 의한 심사권보다 포괄적인 심사권은 상임위에 부여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행정입법을 수시로 변경해야 한다면 정부 정책의 효율성 일관성 저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총리는 “시행 중인 행정입법도 국회 상임위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수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민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발전에 큰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국회법 개정안은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논란을 초래하고 있고, 정부의 행정입법권과 법원 심사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도 했다.
황 총리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설명이 끝난 뒤 야당 의원들은 ‘질의신청’ 등을 통해 정부의 국회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결 참여를 촉구했다.
새정치연합 박범계 의원은 “대통령이 국회를 발밑의 신하로 업신여겼다”고 비판하면서 “재의 투표가 비공개로 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대통령 권한이 막강하니까 소신껏 표결할 수 없는 분위기 있어서 비공개로 해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란 뜻”이라며 여당을 비판했다.
박 의원은 “헌법상 권한 행사이기 때문에 이것은 절차에 따라서 소신껏 표결하면 되는 일”이라면서 “근데 우리는 이 일을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에서 대의 민주주의를 시험 할 수 있는 그러한 장면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꼬집었다.
같은 당 박수현 의원도 “귀중한 피를 흘려 이룩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유신독재 과거로 회귀하는 참담함을 느끼는 날”이라면서 “대한민국 정치에 국민은 없고 청와대의 오만과 지시에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영혼 없는 거수기만 남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의원은 “박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위헌성의 문제도 아니고 삼권분립 원칙에 대한 문제도 아니다”며 “국민 안중에도 없는 오만 독선의 표출”이라고도 했다.
질의신청과 토론신청에서 야당 의원들의 성토가 이어지자 여당에선 청와대 홍보·정무수석을 지낸 이정현 의원이 유일하게 반대토론에 나서 ‘국회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의원은 “우리 헌법에는 국회가 (행정부를) 통제할 수 있는 여러 장치 마련하고 있다”며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통해서 엄격하게 통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국회에서는 국무위원들 출석시키고 정부로 하여금 자료 제출하게 해서 국무위원 상대로 대정부질문, 예결위 질의 상임위 질의를 통해 또 통제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개별 입법 통해서 국회가 (행정부를 통제) 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