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20여년 만의 파업을 경험했던 현대중공업이 올해도 임금 협상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2일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전날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올해 임금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파업 찬반투표에 들어갔다. 노조 측은 “회사 측이 임협에서 성실한 교섭을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높아 파업 투표가 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투표는 21일 오전 6시 30분부터 전체 조합원 1만7749명을 대상으로 울산 본사 13곳과 서울사무소·음성공장 등 총 15곳 투표소에서 실시된다. 투표는 23일 오후 1시 30분에 마무리되며 노조는 사내 체육관에서 개표할 예정이다.
올해 현대중공업 노조는 기본급 12만7560원에 직무환경수당 100% 인상, 고정성과금 250% 보장, 기본급 3%를 노후연금으로 적립하는 노후연금제도 시행,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 등을 요구하고 있다. 요구안이 관철될 경우 실질적으로 월 25만원의 임금 인상 효과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회사 측은 이 같은 요구가 무리하다고 보고 재검토를 요청했다. 하지만 노조 측은 이를 거부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고, 중노위가 조정중지 결정을 내림에 따라 노조 측의 쟁의행위가 가능해졌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노조는 20여년 만에 부분파업 등의 파업에 돌입했고 잠정 합의안이 한 차례 부결되는 파행 끝에 기본급 4만7000원 인상을 관철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지난해 창사 이래 최악의 적자를 기록해 임원 30%를 감축하고 조직 개편에 이어 대규모 희망퇴직까지 단행한 마당에 요구안이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 권오갑 사장은 지난 6월 구조조정 중단을 선언하고 위로금을 지급하는 등 근로자 달래기에 나선 바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기대를 모았던 2분기 흑자전환은 고사하고, 전 사업부에 걸쳐 실적 저하와 함께 신규 수주 가뭄이 계속되며 당장 내년 일감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지금은 투쟁할 때가 아니라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근 조선업계에 해양플랜트 적자 쓰나미가 몰아치고 있는 것도 부담 요인이다.
노조 측은 회사 측이 구체적 제안도 없이 시간만 지연시키고 있어 파업 찬반투표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아직까지 회사 측은 “노조 측의 제안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구체적 제시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현재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이나 삼성중공업과 달리 지난해 해양플랜트 손실분을 미리 반영했기 때문에 2분기 흑자가 예상되고 있어 노조의 임금인상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이다. 2분기 조 단위 적자가 예상되는 대우조선해양이나 삼성중공업은 노조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파업 찬반투표가 가결되더라도 즉시 쟁의행위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이번 파업 찬반투표를 노조가 여름휴가 전 임협을 마무리하기 위해 회사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노조 측 역시 “임협에 진전이 없다면 여름휴가가 끝나는 8월 23일부터 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혀 이 같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