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이 재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무더기 해임 사태 초기 롯데 측의 설명에도 일언반구하던 신동주 전 부회장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막전막후가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30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간 베일 속에 쌓여 있었던 동생 신동빈 회장과의 분쟁 막전 막후를 상세히 공개했다.
◆신동주 “일본에 억지로 모시고 간 것 아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회장님이 일관되게 ‘이 인간’(신동빈 회장)을 쫓아내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 측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판단이 흐려진 상태였다고 밝힌 것에 대한 정면 반박인 셈으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진의 무더기 해임 사태가 신격호 총괄회장의 뜻이 정확하게 반영된 것이라는 얘기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또한 “롯데의 인사는 창업 이후 아버지가 전부 결정했고 이번 건 역시 아버지의 뜻”이라며 “일본에 억지로 모시고 간 것도 아니다. 아버지의 ‘지시서’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신동주 전 부회장이 <KBS>와의 인터뷰에서 공개한 해임 지시서에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일본 이름인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라는 서명이 기재돼 있다.
물론 롯데그룹 측은 해임지시서 만으로는 효력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중요한 것은 신격회 총괄회장의 뜻이 어디를 향했느냐라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중요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올해 1월 일본 롯데홀딩스의 실적 악화 때문에 축출된 것으로 알려졌던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의 경영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이 중국 사업과 한국 롯데의 실적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고 그가 한일 양쪽을 경영한다는 신문기사가 나왔지만 아버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이를 두고 상당한 분노를 표했다고 덧붙였다.
신동주 전 부회장에 따르면 일본 롯데홀딩스의 실적 악화 역시 부풀려진 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진행하던 투자가 예산을 초과해 일본 롯데에 수억 엔 정도의 손해를 끼쳤는데 동생(신동빈 회장)이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롯데 대표이사 사장과 짜고 아버지에게 왜곡된 보고를 했다”면서 “12월 중순 월간 영업보고를 하기 위해 아버지를 만났는데 대뜸 ‘그만두라’고 해 영구 추방과 유사한 상태가 됐다”고 설명했다.
신동빈 회장 측은 즉시 “왜곡된 보고를 한 적이 없고 해임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실적 악화 때문”이라고 반박했지만, 실적 악화 흐름이 나온 지 시일이 좀 지났다는 점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의 주장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 측이 중국 사업에서 큰 손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신격호 총괄회장이 마음을 돌리게 됐다고 주장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롯데그룹의 중국 사업에서 1조원 가까운 손실이 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신동빈 회장 측은 손실 규모가 3000억원 정도라며 왜곡됐다는 입장이다.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빈 회장에 마음 접었나
이처럼 그간 갑작스러운 해임과 맞해임 사태를 둘러싼 전말이 비교적 소상히 밝혀지자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의 말에 힘을 싣고 있는 분위기다. 그간 롯데그룹 측이 신동주 전 부회장이 물러나게 된 이유나 이사진 해임 사태에 대한 이유 등을 설명했던 부분이 실제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의 신격호 총괄회장의 판단이 흐려져 오락가락했다는 식의 설명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마음이 변화하는 과정을 비교적 세세하게 설명하면서 어느 정도 의문이 해소되고 있다는 평가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말을 종합해 보면 신동주 전 부회장이 물러나게 된 것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형제 중 실적이 뛰어난 신동빈 회장을 선택했다”는 롯데그룹 측 설명과 달리 신격호 총괄회장이 장남이 보고하지 않고 투자를 한 데 대해 격노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일본 파나소닉의 자회사인 재고관리 전문 벤처기업에 신동주 전 부회장이 8억엔을 투자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인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과 고바야시 마사모토 전무는 이 투자 사실을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보고했고, 보고를 받은 신격호 총괄회장은 쓰쿠다 사장에게 “(신동주 전 부회장을) 모두 다 빼라”고 지시했다. “정말 해임하라는 얘기냐”고 수차례 물어도 대답은 같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총괄회장님은 투자·인수합병·주식 문제 등을 본인과 상의하지 않고 집행하는 것을 싫어하시고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수 십년간 일본 롯데를 경영해온 장남을 그만한 금액의 투자 문제로 해임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 측 관계자는 “차남이 아버지를 장악한 채 다른 사람이 총괄회장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고 4~5년에 걸쳐 문제를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인터뷰에서 “지난 1월 이사직에서 해임된 이유는 신동빈 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 등이 왜곡된 정보를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줬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주장의 연장선상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 주장에 무게 실려

아버지의 눈 밖에 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오해를 풀기 위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머물고 있는 아버지를 일주일에 한두 번씩 찾아가 사죄하고 다시 기회를 줄 것을 읍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복누나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을 만나 식사를 하는 모습도 여러 차례 목격됐다. 특히 신영자 이사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을 근접 보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꾸준하게 “신동빈 회장도 보고하지 않고 중국 사업에 투자해 1조원 이상 적자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 점이 결국 먹혔다. 일각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10일간 신격호 총괄회장의 집무실 겸 거처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중국 투자, M&A(인수합병) 건은 항상 세 차례 이상 보고를 했고, 관련 기사가 난 신문 스크랩도 계속 보셨는데, 신격호 총괄회장은 신동빈 전 부회장 진영의 모함하는 보고만 믿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이는 고령의 신격호 총괄회장의 판단이 흐려진 것이라는 주장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의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5월부터 결국 마음을 돌리기 시작, 이달 들어서 완전히 신동빈 회장에게서 마음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사업의 적자에 대해 신동빈 회장을 질책한 신격호 회장은 지난 10일부터 아예 방 출입을 금지했고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마저 출입금지를 시켰다. 이어 신격호 총괄회장은 지난 27일 일본 롯데홀딩스 본사를 찾아 신동빈 회장을 포함한 이사 6명의 해임을 지시했다. 뒤이어 신동빈 회장 측이 반격을 가하면서 사태가 확산 일로를 걷게 됐다.
◆주총 세력 결집 나선 형제, 결과는 오리무중
한편 현재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은 주총을 두고 세력 결집에 나서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주주총회를 열어 이사 교체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신격호 총괄회장과 종업원 지주회를 합하면 의결권이 전체의 3분의 2가 된다며 신 회장에게 대항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교체를 제안하겠다”며 “롯데홀딩스의 의결권은 아버지가 대표인 자산관리 회사가 33%를 지닌다. 나는 2% 미만이지만 32% 넘는 종업원 지주회를 합하면 3분의 2가 된다”고 밝혔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의 의결권은 롯데 홀딩스도, 광윤사도 나보다 작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주총 표대결로 이어질 경우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해임 지시서가 허위가 아니라면 신격호 회장이 장남 편에 섰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격호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20% 이상 소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광윤사 지분도 상당량 갖고 있다고 한다.
신격호 회장이 의결권 싸움에서 장남 편에 선다면 신동빈 회장은 아버지의 의사결정 능력에 이의를 제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신격호 회장은 정신 감정까지 받아야할 수 있다. 신동빈 회장 측은 ‘신격호 회장은 거동과 판단이 어렵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아버지는 지금도 경영에 참여해 주요 의사결정을 내릴만큼 건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신격호 회장은 실제로 주요 계열사 경영진 보고도 받고 잠실 제2롯데월드 경영 현황에 관심을 보일만큼 건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이사회 이전부터 치매 등 정신이상 증세가 있었다면 병원 진료기록, 주치의 소견서 등이 있을 것”이라며 “금치산자 상태임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신동빈 회장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신동빈 회장 측은 지난 29일 “한·일 롯데그룹이 지주회사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50% 이상을 확보했다”고 주장하며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실제 신동빈 회장이 15일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오르고 이사회가 28일 전날 나온 신격호 회장의 구두 해임 지시를 무효화한 것은 우호 지분이 우세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변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