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업계 빅3가 해양플랜트 손실로 2분기 도합 5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앞으로 ‘악성 해양플랜트’ 쇼크를 몰고 온 대우조선해양에 비해 삼성중공업이 향후 더욱 험난한 길을 걸을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4일 NICE신용평가는 삼성중공업의 장기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하향 조정하고 하향검토 등급감시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등급 전망은 ‘부정적’을 제시했고, 단기신용등급도 ‘A1’에서 ‘A2+’로 낮추고 하향검토 등급감시대상에서 제외했다.
NICE신용평가는 “지난 2분기 대규모 손실 발생으로 수익창출력이 크게 저하된 가운데 제반 프로젝트 관리 능력과 향후 원가통제 여부에도 불확실성이 확대된 것으로 판단되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충당금을 설정한 프로젝트 제작 진해 과정에서 부족 자금 발생이 예상되는 점도 회사의 현금 흐름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도 한 몫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앞서 삼성중공업은 2분기 실적 발표에서 1조5481억원이라는 기록적인 영업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영업손실 규모는 매출액 1조4395억원을 넘어섰고 당기순손실도 1조155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삼성중공업, 앞길이 더 험난?
물론 이 같은 적자폭은 대우조선해양의 3조원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이번에 대거 손실 충당금을 쌓으면서 미청구 공사 금액을 상당수 털어낸 데 비해 삼성중공업은 추가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며 앞으로는 삼성중공업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 배경에는 1분기 말 기준 9조4150억원에 달하는 미청구 공사 대금이 있었다.
미청구 공사란 매출채권의 일종으로 ‘발주처로부터 아직 받지 못한 돈’이다. 제조사에서는 공사 진행률을 50%로 보지만 발주처에서는 40%만 인정했다면 10%가 미청구공사로 분류된다. 이 항목은 장부에는 자산으로 반영되지만 해당 프로젝트의 진척이 더디거나 차질을 빚으면 언제든 대규모 손실로 변할 위험성을 갖고 있다.
장부에만 잡히고 실제는 들어오지 않은 돈이라는 얘기다. 미청구 공사 금액은 매출채권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매출채권보다 떼이기 쉽고, 충당금으로 설정하지도 않는데 매출로 잡혀 여러모로 리스크가 크다. 조선업계에 대규모 적자 러시가 발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기가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미청구공사액도 급격하게 불어나기 때문에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1분기 말 기준 미청구 공사 금액은 현대중공업이 7조4630억원, 삼성중공업 4조7990억원, 대우조선해양 9조4150억원이었다. 각각 매출액 대비 미청구공사금액 비율은 20%·43%·55%였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2분기 실적에 미청구 공사 금액을 대거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이번에 3조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정성립 신임 사장의 방침에 따라 무리가 갈 수 있더라도 그간 미반영됐던 부실을 되도록 모두 털고 가자는 차원에서다.
대우조선해양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까지 더해 지난해 대거 수주한 LNG선 등의 건조가 본격화되는 하반기 이후부터는 실적을 회복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동성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미청구 공사 금액을 줄이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한 정성립 사장은 “유동성 위기는 없다”고 자신했다. 3조원 가량을 매출에서 제외하고 충당금으로 쌓은 대우조선해양의 미청구 공사 금액은 5조원 후반대로 뚝 떨어졌다.

◆저가 수주 부메랑에 공사 지연까지
반면 삼성중공업은 특히 지난해 1분기에 어느 정도 반영했던 나이지리아 에지나 프로젝트 관련 손실을 이번에 추가로 반영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에도 추가로 눈덩이 손실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명확함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013년 6월 30억달러(당시 환율로 약 3조4000억원)에 이 프로젝트를 발주처인 프랑스 토탈사로부터 수주했다. 당시 삼성중공업은 이미 그 전 해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현대중공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수주전에 뛰어들어 승리를 따냈다. 업계에서는 상선 수주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저가 수주라는 얘기가 돌았다.
경험이 부족했던 삼성중공업의 막판 뒤집기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는 상태다. 이 프로젝트는 2017년까지 나이지리아 서쪽 130㎞ 해상에 길이 330m, 폭 61m, 높이 34m 규모의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를 건설하는 작업이다.
2013년 수주 당시만 해도 사상 최대 규모 FPSO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FPSO는 해상의 일정지역에 머물면서 해저에서 시추한 원유를 정유 제품으로 생산하고, 보관해 다른 선박으로 운반까지하는 해상 복합 구조물이다.
하지만 열악한 현지 사정 때문에 건조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달 초에는 나이지리아 연방법원이 건조 계약 조건이 부당하다는 점을 들어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 연방고등법원은 지난 5월 삼성중공업과 토탈 등에 공사중지명령을 내렸다. 삼성중공업은 이에 불복, 이의제기를 신청한 상태다.
이 같은 공정 지연을 만회하기 위해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된 엔지니어와 숙련 작업자를 대거 에지나 쪽에 투입하면서 연쇄적으로 여파가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설계 변경이 잦았던 점도 공정 관리에 어려움을 미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모든 역량을 에지나 프로젝트에 집중하면서 삼성중공업은 드릴십 인도 지연으로 발주사에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주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 털어냈다지만…수주 잔량 많아 부실 위험 여전
물론 삼성중공업은 이 기회에 에지나 프로젝트 관련 손실을 다 털어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이번에 손익을 재점검하면서 예상되는 모든 리스크를 도출해 반영한 만큼 향후 추가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유사 문제 재발을 방지하는 한편 생산공수(시간과 인력) 절감과 극한의 원가절감으로 손익을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4000억원의 손실을 반영했음에도 결국 올해 2분기 3000억원의 손실을 추가로 반영했다는 점, 제대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은 향후 추가 부실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1분기에도 반영되는 손실 규모가 예상보다 작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2017년으로 예상했던 인도 시점은 아직까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불투명한 정보 공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미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해양플랜트 손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삼성중공업은 2분기 실적 발표 직전까지도 “1조원 규모까지 손실이 나는 정도는 아니다”라며 대규모 손실 반영 가능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삼성중공업의 2분기 영업손실은 1조6000억원에 육박했다. 1년이 갓 지난 상황에서 재차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추가로 반영하자 프로젝트에 허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에도 선제적인 충당금 반영과 더불어 철저한 프로젝트 관리를 통해 추가적인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었다.
더욱이 삼성중공업은 다른 조선사들보다 수주한 해양플랜트 사업이 많다. 삼성중공업의 해양 사업 잔량 규모는 246억달러(약 28조75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진행 중인 대형 해양 프로젝트는 대부분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에 마무리된다. 반면 삼성중공업은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에도 꾸준히 해양플랜트를 수주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말레이시아 에너지기업 페트로나스로부터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LNG-FPSO)를 수주했고, 올해도 2건의 대형 해양플랜트 계약을 체결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들 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라 부실 여부가 판단되지 않은 상태”라면서도 “향후 이들 사업에서 추가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 역시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은 늦어도 내년까지 골치 아픈 해양 플랜트 인도가 대부분 끝나지만, 삼성중공업은 2019년 상반기까지도 일정이 잡혀 있다”며 “어느 프로젝트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향후 부실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다는 얘기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