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건전성 지표 악화 속도↑…자체 노력에도 의구심 여전

14일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이달 초 홍영표 전무는 “정책 금융의 특성상 여신건전성은 위험하지 않은 수준”이라면서 “충당금을 충분히 적립했기 때문에 기업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지 않은 추가손실 우려는 없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분기 3조원대의 기록적인 적자를 기록한 대우조선해양을 비롯, 5대 조선사에 금융사들이 빌려준 금액 50조원 중 40%에 달하는 20조원을 수출입은행이 댄 것으로 나타나면서 부실 우려가 급증하고 있는 것에 따른 것이다.
수출입은행이 타 은행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금액을 5대 조선사에 빌려준 것은 조선업체가 선박을 제때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했을 경우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대신 물어주는 선수금환급보증(RG)의 대부분을 떠맡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조선업종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수출입은행의 부실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상황이다.

수출입은행의 “문제 없다”는 해명에도 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커져만 가고 있다. 수출입은행의 지난 6월 말 기준 국제결제은행(BIS) 총자본비율은 10.01%로 18개 국내 은행 중 최저였다.
지난 4일에는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독자신용도를 강등하기까지 했다. 무디스는 “수출입은행의 악화되고 있는 자산의 질 때문에 독자 신용도를 낮춘다”며 “2013년 12월 10.37%이던 핵심자기자본 비율은 지난 6월 8.92%까지 떨어졌다”면서 독자신용도 강등의 이유를 설명했다. 극심한 부실화 우려 때문이라는 얘기다.
또한 무디스는 “자산 위험 상승도 독자신용도 하락의 이유이며 조선과 같은 문제산업 분야에 대량의 익스포저(위험노출 대출)가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내놨다. 무디스는 다만 부실을 정부가 전부 책임을 맡는 국책은행이라는 점에서 신용등급과 전망은 ‘Aa3’와 ‘긍정적’으로 유지했다.
건전성 지표도 지난해부터 악화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6월 말 1조6000억원이었던 고정이하여신이 올해 6월 말에는 2조5000억원으로 50% 가까이 급증했다. 전체 여신에 고정이하여신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1.7%에서 2.14%로 악화됐다. 두 수치가 모두 악화된 것은 국책은행 중 수출입은행뿐이다.
금융기관 여신은 자산건전성분류기준의 건전성 정도에 따라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의 5단계로 나눠지며, 이중 금융기관의 대출금 중 연체기간이 3개월 이상인 부실채권은 ‘고정’, 연체기간이 3개월~1년이면 ‘회수의문’, 연체기간이 1년 이상이면 ‘추정손실’로 분류한다. 연체기간이 3개월을 넘는 ‘고정’ 등급 이하의 여신을 고정이하여신이라 하며 부실채권으로 간주된다. 고정이하여신의 비율은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평가하는 대표적 지표 중 하나다.
최근 5년간 수출입은행에게 보증이나 대출을 받았다가 법정관리를 받게 된 기업들은 102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수출입은행이 이들에게 내준 여신 총 1조3000억원 중 회수가 가능한 금액은 4000억원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위험관리 체계 문제점 지적 잇따라

결국은 국책은행이라는 특성상 업종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그마저도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잇따라 대형 부실 사태가 발생하면서 수출입은행의 위험관리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지난해 모뉴엘의 사기 대출 사태다. 수출입은행은 당시 모뉴엘 박홍석 대표의 연대보증도 받지 않은 채 정책자금 1135억원을 신용대출로 내준 것으로 확인됐다. 수출 기업 지원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출 심사 기준이 다소 느슨하다는 지적이 현실화된 대표적인 사례였다.
올해 법정관리에 돌입한 경남기업에도 5209억원의 대출 및 보증을 내주면서 수출입은행이 입은 손실은 2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 5월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은 수출입은행이 경남기업 신용평가에서는 정상영업이 가능하다고 평가하면서도 비슷한 상태의 이수건설은 부실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대출평가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다.
◆부실 대출 막는 것이 급선무…해법은?
금융권에서는 결국 수출입은행이 국책은행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대출 심사 체계와 리스크 관리를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실 대출’을 막는 것이 급선무라는 얘기다. 수출입은행의 여신이 부실화하면 국가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무리 국책은행이라하더라도 대출의 부실화를 막는 것이 최우선적인 과제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현재 수출입은행의 대출심사 능력은 많은 면에서 의문을 받는 상태다. 점을 지니고 있다. 경남기업에 지원한 묻지마식 대출로 특혜 논란을 야기하는가 하면 모뉴엘에 담보도 없이 제공한 대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수출입은행은 매년 자금 공급액 목표를 정해 기획재정부 장관의 승인을 받는다. 자금공급액 목표를 줄이면 업무를 줄이는 것처럼 비춰지기 때문에 목표액은 항상 올라간다. 관행화된 자금 공급 증가는 필연적으로 부실 대출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정부와 국회가 수출확대를 위한 금융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수출입은행의 중소중견기업 지원은 날로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7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014년 회계연도 결산 예비심사보고서에서 “짧은 시간 내에 여신규모의 양적 확대에 치중하는 과정에서 리스크관리 및 기업심사 역량 제고가 수반되지 못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돈이 남아 돌아서 마구 뿌렸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수출입은행의 직원 규모로는 공급 자금이 늘어나도 여신심사시스템 부실을 막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출입은행의 직원은 지난 1분기 기준 총 881명으로 2007년의 687명에 비교하면 자금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에 비해 직원들은 28.2%가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실무 담당 직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출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 와중에 내부 직원들의 기강 단속에도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데 지난해 모뉴엘 사태 당시 여신업무를 담당했던 간부 2명은 금품수수혐의로 기소됐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과다 대출자를 여신업무에서 제외한다는 원칙을 세웠던 수출입은행은 간부 2명 중 한 명은 대출만 10억원이 넘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수출입은행은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현재 수출입은행은 모뉴엘 사건 이후 내부 규정을 바꾸고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시행하는 한편 리스크관리단을 본부로 격상하고 조직을 확대하는 등 부실 대출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국책은행인만큼 자금 공급에 대한 정책의 일관성과 정책금융지주회사 등의 설립으로 효율적인 집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 등 다양한 대안에 대한 논의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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