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처음…은행권에 영향 미칠까

2일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나이스신용평가는 SC은행의 장기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국내 은행권 신용등급이 하락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무려 17년여 만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등급 강등 이유에 대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SC은행의) 영업 규모가 축소되면서 시장 지위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은행권 일각에서는 한동안 철옹성처럼 여겨졌던 은행권의 신용도가 저금리 기조 속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하락하는 여파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SC은행으로서도 대규모 구조조정의 가시적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안팎으로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나이스신평 “핵심 이익력 저하”
나이스신용평가가 꼬집은 SC은행의 신용등급 하향 이유는 주로 국내에서 SC은행의 핵심 이익력이 저하됐다는 점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한국SC은행은 국내 저금리 기조와 영업 기반 축소, 높은 판관비 부담 등으로 핵심 이익력이 저하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SC은행의 지난 3분기 영업실적이 신통치 않았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SC은행은 올해 상반기까지 흑자전환했지만 다시 3분기에 3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 176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던 지난해 3분기에 비해 120% 가량 이익이 감소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 부분에 대해 “이익안정성이 저하된 것으로 판단한다”는 코멘트를 달았다. SC은행은 이에 대해 “3분기에 기업여신 부문에서 경기 부진에 따른 충당금 적립이 증가하면서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자산건전성 면에서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SC은행은 3분기 고정이하여신비율이 1.39%로 같은 외국계 은행인 씨티은행의 0.87%에 비해 0.52%p 가량 높았다. 대손충당금 적립비율 역시 156.92%로 씨티은행의 302.9%의 절반에 불과했다.
3분기 순이자마진(NIM)은 1.64%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90%에 비해 0.26%p 떨어졌고 총자산이익률(ROA)는 0.08%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14%p 떨어졌다. 자기자본순이익률(ROE) 역시 1.05%로 0.77%p 하락했다.
높은 판매관리비 비율도 등급 하향의 이유로 꼽혔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SC은행의 판관비용률(판관비/총자산)은 9월 말 기준 1.5%로 시중은행 평균인 1.0%를 크게 상회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SC은행은 전체 임직원의 20%에 가까운 약 1천 명에 달하는 인력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나이스신용평가는 “장기적으로는 인건비 감소로 인해 비용효율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겠지만 인원 축소에 따른 영업력 유지나 대규모 퇴직금 지출에 따른 자기자본완충력 변화 등은 향후 관찰돼야 할 것”이라며 당분간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업기반 축소도 골칫거리다. 나이스신용평가는 “9월말 기준 SC은행의 총수신 및 총여신 점유율이 각각 2.5%와 1.9% 수준으로 2010년에 비해 각각 1.5%p 이상 하락했다”고 짚었다. 핵심이익원인 순이자이익 역시 2012년 1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1조1000억원으로 하락했고 올해 9월 말에도 7298억원에 구쳤다.
또한 새로운 영업채널이 아직 정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영업기반의 축소가 감지된다는 지적도 곁들여졌다. 은행의 전반적인 이익창출 기반이 도전받고 있다는 얘기다.
모그룹인 영국 스탠다드차타드그룹의 지원여력 축소도 신용등급 하락의 이유로 꼽혔다. 스탠다드차타드그룹은 최근 최대 수익원 역할을 하던 신흥국과 원자재 시장의 부진 탓에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아시아·중동·아프리카 등 신흥경제국이 주요 영업지역인 스탠다드차타드그룹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중심의 타 금융그룹에 비해 실적이 개선됐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신흥경제국의 성장성이 둔화되고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실물자산 관련 손실이 발생해 올해 3분기 1억3900만달러의 세전손실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모그룹의 지원 여력이 과거에 비해 약해진 것으로 판단된다는 얘기다. 더욱이 SC은행은 외국계 은행이기 때문에 국내 시중은행들에 비해 부실화가 심해질 경우 정부의 지원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장기적 신용등급 조정 가능성 제기
지난해 12월 나이스신용평가는 SC은행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변경하면서 총수신성장률이 은행업계 평균보다 낮거나 총자산순이익률(ROA)이 0.5%를 밑돌면 등급을 하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경고에도 불구하고 SC은행의 지표는 나아지지 않았다. 나이스신용평가는 SC은행의 3분기 기준 수신성장률이 0.2%에 그쳐 은행업계 평균인 6.1%를 크게 하회했고 총자산순이익률(ROA) 역시 0.2%에 그쳐 4분기 실적 전망을 감안하면 연간 ROA가 0.5%를 밑돌 것이 확실시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에서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신용등급 조정이 현실화됐다는 것은 놀랍다는 반응이 나온다. 앞서 지난달 5일 SC은행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발표했던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 역시 지난달 13일 SC은행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낮춘 바 있었지만, 국내 신용평가사까지 실제로 신용등급을 내릴 것으로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SC은행이 외국계 은행이기는 하지만 다른 시중은행들도 안심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저성장과 저금리 기조 속에서 은행권은 대체적으로 수익성이 적지 않게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영업자산대비 이자이익비율도 저하되는 추세고 가계부채 비율 증가, 위험업종의 재무상태 악화로 여신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특히 지난해 말 나이스신용평가로부터 SC은행과 함께 ‘부정적’ 꼬리표를 받았던 씨티은행의 긴장감은 남다르다. 특히 나이스신용평가는 지속적으로 SC은행과 함께 씨티은행이 시장 지위 하락과 수익성 저하, 계열 내 비중 악화 등으로 등급 하향 조정 압력이 가장 높다고 경고해 온 바 있다.
씨티은행은 6월말 기준으로 SC은행과 함께 총 대출 중 가계 여신 비율이 가장 높은 은행으로 꼽힌 바 있다. 가계 부채가 폭증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향후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받고 있는 셈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SC은행과 함께 시티은행에 대해 “구조적인 이익률은 업계 내에서 열위한 수준이고 평가 지표는 시중은행은 물론 부산은행이나 대구은행에도 못 미친다”는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당장 은행권 전체로 신용등급 조정이 확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또한 SC은행의 신용도 하락 역시 타 시중은행의 신용도 만큼은 아니라는 뜻이지 당장 부실이 심각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위험여신 비중이 높은 은행들은 신용도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은행별로 신용도가 차별화될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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