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목적보다 그룹 지배권 강화 악용 더 많아” 비판 제기

29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SDI로부터 삼성물산 지분 1%를 3000억원에 사들였다.
이는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면서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신규 순환출자고리가 발생한 것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2.6%, 7600억원 어치가 해소 대상이 됐으며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 실권주 청약 목적으로 밝히고 삼성SDS 지분을 매각하면서 마련한 3000억원 중 2000억원을 투입했고 삼성생명공익재단이 3000억원을 들였다. 나머지는 블록딜 방식으로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에게 매각됐다.
하지만 공익재단의 자금이 오너 일가의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보에 동원되면서 과거에도 수 차례 받아온 삼성생명공익재단의 계열사 지분 보유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태세다. 공익재단은 공익 목적으로 세워진 것인데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에 삼성그룹뿐 아니라 적지 않은 대기업들이 공익재단을 설립해 그룹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데에 활용하고 있는 실태가 다시 재조명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이미 국회에는 공익재단 보유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제출된 상태지만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공익재단, 경영권 승계 핵심 되는 이유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에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삼성그룹을 비롯해 현대차그룹, SK그룹, LG그룹, 롯데그룹 등 5대 그룹이 공익재단을 통해 확보한 핵심 계열사의 지분 가치는 6조6536억원에 달했다.
특히 공익재단의 핵심 계열사 보유 지분 가치는 대부분 삼성그룹의 몫이었다. 삼성그룹은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꿈장학재단, 삼성문화재단, 삼성복지재단 등 4개의 공익법인이 당시 기준으로 삼성생명 등 8개 계열사의 5조4402억원 어치 지분(당시 시가 기준)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중 이번에 삼성물산 지분을 인수한 삼성생명장학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은 지난해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받아 경영권 승계의 핵심으로도 꼽힌다. 원래 공익법인은 계열사 지분을 5% 미만으로 인수할 경우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되면 10% 미만까지 상속세와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와병 중이던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이 두 재단의 이사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당장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20.8%를 상속받아야 하는 이재용 부회장이 공익법인을 이용해 5조원이 넘는 상속세를 회피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건희 회장이 지분을 공익재단에 넘길 경우 이사장인 이재용 부회장이 지배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익법인에 면세혜택을 주는 취지는 공익을 위해 재벌가 재산의 사회 환원을 장려하자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재벌의 공익재단은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인 세금 탈루와 경영권 보장 수단으로 쓰이는 것 아니냐는 빈축을 사기 일쑤다.

다른 대기업으로 눈을 돌려봐도 비슷한 현상이 목격된다. 현대차그룹의 정몽구재단은 이노션 지분 10%와 현대글로비스 지분 4.46%를 보유하고 있다. 양사 모두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주요하게 활용될 것으로 예측되는 계열사다. 시가로는 지난해 3분기 기준 3362억원 정도로 파악된 바 있다.
정몽구재단 역시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된 상태로 면세 혜택을 받고 있다. 특히 박영선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06년 현대차그룹정몽구 회장은 2006년 현대글로비스 비자금 사태 이후 1조원의 사재 출연을 약속했고 지난해 말까지 보유주식 8500억원 어치를 출연했지만 이 중 절반이 넘는 5871억원 어치는 아직 정몽구 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SK그룹의 한국고등교육재단이나 LG그룹의 엘지연암학원·엘지연암문화재단, 롯데그룹의 롯데장학재단·롯데삼동재단 등도 계열사 지분을 수 천억원 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장학재단은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에 있는 롯데제과 지분을 8.69%나 보유하고 있다.
최근 금호산업을 되찾기 위해 특수목적법인 ‘금호기업’을 설립한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은 금호아시아나재단과 죽호학원 등 2개의 공익법인을 금호기업 지분 매입에 동원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재벌이 공익법인을 이용해 지배권을 유지·강화한 대표적 사례”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국회의 제한 움직임에도 논의 사실상 중단
일단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측은 비판이 제기되자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삼성물산 지분 매입은 투자 수익 확보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민단체 측에서는 공익목적으로 세워진 공익재단의 자금이 그룹의 지배구조 유지에 동원됐다는 점에서 설립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회 일각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삼성 저격수’로도 불리는 박영선 의원은 지난해 공익재단의 보유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또한 성실공익법인제도를 폐지해 5%~10% 구간의 면세 혜택을 없애자는 내용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선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대기업 계열 공익법인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3년에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의원이 재벌계열 공익재단의 계열사 주식 의결권 제한 법안을 내놓기도 했다. 역시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사람과 특수 관계인 공익법인이 취득·소유한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재벌 그룹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공익법인들이 그룹 지주사들의 지분을 우선 보유하는 등 소유지배구조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어 설립목적과 달리 지배 주주의 지배력 강화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국회에서 이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재벌들의 강력한 반발 속에 제대로 된 논의도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안다”면서 “사회공헌이라는 공익재단의 목표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성토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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