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을 뒤흔들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가 확산 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서울 지역 주요 진원지로 꼽히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의 부분 폐쇄 등 늑장 대응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책임도 크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 15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팟캐스트 방송 ‘노유진의 정치 카페’ 54편에 출연,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삼성공익재단 이사장인 이재용 씨가 (부분 폐쇄를) 결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삼성공익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산하 기관이며,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30일로 임기가 만료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후임으로 새 이사장에 선출됐다.
유시민 전 장관은 “삼성공익재단이 운영하는 삼성서울병원의 부분 폐쇄는 재단 이사장이 폐쇄 결정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일주일 전 쯤 이재용 씨가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는데 재단 이사장이 정치적인 부담을 갖게 되면서 폐쇄를 결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의 대응 조치가 늦어져 진정세로 접어들던 메르스가 다시 확산됐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이처럼 부분 폐쇄 결정권자가 이재용 부회장으로 추측된다는 분석은 삼성서울병원의 늦장 대응이 이재용 부회장의 늦은 결단 때문에 아니냐는 얘기를 낳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TF 요구에 뒤늦게서야 부분폐쇄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14일부터 부분 폐쇄에 들어갔다. 이는 언론 등을 통해 삼성서울병원 의료진(35번 환자)의 확진 은폐 의혹이 터져 나오고 보건복지부가 이 의사를 확진자 명단에 넣어 발표한 지 2주일여 만이고, '슈퍼전파자'인 14번 환자가 들른지 20일여 만이다.
그간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메르스의 확산세는 지난 12일 추가 확진자가 줄면서 진정 국면으로 돌아섰다는 분석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 환자 이송직원의 확진으로 재확산 우려가 커지면서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의 민관합동태스크포스(TF) 즉각대응팀은 13일 밤 9시 이후 삼성서울병원에 즉각적인 대응조치를 우려했다.
대응팀은 “137번 환자의 확진으로 삼성서울병원의 응급실, 병동, 외래 등에서 다수 접촉자가 발생했다”며 대책 수립을 요구했고, 병원 측은 긴급회의에 들어간 끝에 외래·입원 및 응급실 진료를 전면 제한하고 수술도 응급상황 외에는 모두 중단하는 ‘부분폐쇄’ 방침을 마련했다.

◆미적대던 삼성서울병원, 질타 ‘한 몸’
대응팀의 요구에 따른 삼성서울병원의 즉각적인 부분폐쇄 방침은 그간 여론은 물론 국회 차원에서까지 지적하던 삼성서울병원의 ‘안전불감증’ 비판에 비춰 볼 때 이례적이었다는 평가다. 당초 삼성서울병원은 그간 35번 환자인 의료진의 확진이 판정된 이후에도 페쇄 또는 부분 폐쇄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혀 왔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 내부에서는 “한시적인 부분폐쇄일지라도 응급실 진료와 입원을 전면 제한하고 환자에 대한 수술도 하지 않는다면 의료기관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잃는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폐쇄가 이뤄지면 공백기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반대 근거로 꼽힌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지난 11일 정두련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국회 메르스 특별대책위원회가 삼성서울병원이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국가가 뚫린 것”이라며 삼성서울병원의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송재훈 병원장 역시 의료진과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메르스를 옮긴 ‘슈퍼 전파자’ 14번 환자를 막지 못해서 안타깝다면서도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결국 부분 폐쇄 이후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환자가 잇따라 확진 판정을 받음에 따라 이 같은 삼성서울병원의 ‘늦장 대응’은 결국 확산세를 다시 ‘부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달 27일 14번 환자가 응급실에 머무른 후 응급실을 일시 방역하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35번 환자가 국립거점병원으로 격리된 후에 보도된 의혹들에도 “정부의 방침에 따르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입장 선회, 왜?
특히 이 부분 폐쇄 결정이 이재용 부회장에 의해 내려졌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그간 폐쇄 등의 방침이 지연된 것 역시 병원장 및 내부 의료진들 뿐 아니라 이재용 부회장도 사태를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한 탓이 아니냐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그간 ‘끄떡없던’ 삼성서울병원의 입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위시한 청와대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은 대응팀의 요구 이후 즉시 선회했다는 점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이재용 부회장의 입김 때문이 아니겠냐는 얘기다.
실제 유시민 전 의원은 이날 “(삼성서울병원의 초기 대응과 부분 폐쇄 결정이) 일관성이 없지 않나”라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입김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에 힘을 실었다.
사태 진정을 위해 한시라도 바삐 움직였어야 할 삼성서울병원이 14번 환자의 방문과 35번 환자의 격리 이후 정부 뒤로 숨어 전면에 나서지 않던 것을 감안하면 결정권자로 추정되는 이재용 부회장이 빠른 결단을 내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에 책임론이 제기되는 셈이다.
노회찬 전 국회의원은 이날 방송에서 “서울시에서 부분 폐쇄를 요구했지만 병원이 불응해 강제조치하겠다고 한 것으로 안다”고 전하며 “(폐쇄 방침이) 조금 더 빨랐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실제 이송요원인 137번 환자는 특성상 9일간 아무런 격리나 통제 없이 응급실 등 병원 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반 환자와 접촉해 우려를 낳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병원이 삼성생명공익재단에 소속돼 있는 산하 기관인데다, 부분폐쇄는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인 만큼 이재용 부회장이 최종 의사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는 게 맞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반면 삼성서울병원 측은 “물론 그룹하고 조율을 하지 않을 수는 없고, 이재용 부회장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맞다”면서도 “이재용 부회장이 부분폐쇄를 결정했다거나 하는 얘기는 알 수 없다”고 일관되게 관련설을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재용 나서라” 전방위 압박
한편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병원장과 사장단이 잇따라 사과의 뜻을 밝힌 것만으로는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에 충분치 않다는 의견도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나서라”는 얘기다.
이는 삼성서울병원이 사실상 가장 큰 확산지로 떠오르면서 결국 그룹 최고 경영권자나 다름 없는 이재용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삼성그룹의 명예를 걸고 메르스 확산 차단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재용 부회장으로서도 상징적인 의미가 큰 재단 이사장직에 오르자 마자 메르스 사태로 홍역을 앓고 있는 상황이 달가울리 없다. 현재 국민들과 언론은 물론이고 국회에서도 삼성서울병원을 질책하는 목소리가 극에 달한 상황이고 점차 삼성그룹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옮겨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리는 삼성그룹의 상계를 상징하는 자리다. 이건희 회장이 회장직 외에 유이하게 맡았던 직함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의 이사장 자리였다는 점에서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총력을 다하지 않을 경우 자칫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에 타격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아울러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방역관리 실책은 그동안 병원운영과는 선을 그었던 삼성생명공익재단은 물론 삼성그룹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