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변경, 시간끌기 의혹에 노조 폭발…이달 중 결론 날까

10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최근 노조 측에 지난해 하반기 국내에 출시된 GM의 베스트셀링 준대형 세단 ‘임팔라’의 국내 생산을 위한 기술 검토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노조 측이 지난달까지 사측에 임팔라의 국내 생산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한 데에 따른 조치다. 사측은 중장기 사업 전략을 논의하는 미래발전위원회에서 국내 생산을 위한 걸림돌로 국내의 연비 규제 정책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술적인 문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꼽고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노조 측은 일단 이달 말까지 두고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사측이 그간 임팔라가 국내에서 숱한 호평을 받으면서 사전 계약 물량이 수급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생황에서도 국내 생산을 위한 조건을 임의로 바꾸는 등 차일피일 미뤄왔다는 점에서다.
특히 사내에서 사측에 대한 여론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라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의 한국GM 지분 매각건까지 연관시키며 사측이 임팔라 국내 생산 카드를 꽃놀이패로 사용하면서 철수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임팔라, 한국GM 히트상품 자리매김
지난해 하반기 한국GM은 부진을 겪던 알페온을 단종시키고 GM의 글로벌 베스트셀링카 임팔라를 출시했다. 임팔라는 미국에서 생산돼 직수입되는 일명 ‘OEM 수입차’로 현재 국산차로 분류된다.
임팔라는 그간 수 차례 증명된 명성만큼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전장이 5미터가 넘는 준대형 수입차인데도 3천만원 초중반대에서 4천만원 초반대의 공격적인 가격 정책은 물론이고 재원 및 성능, A/S 등 많은 면에서 뜨거운 관심이 모아졌다.
이에 지난해 8월 출시된 임팔라는 출시 직후부터 수요가 폭발했다. 지난 한 해 반 년도 채 안 되는 기간동안 임팔라의 총 판매량은 6913대로 기록됐다. 월 평균 1382대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무려 2699대나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판매량 증가세가 주춤한 상황이다. 임팔라는 올해 1월 1551대, 2월 1255대로 판매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호평 속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부터의 물량 공급이 달려 사전 계약으로부터 인도받는 시점까지의 기간이 상당하다는 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선 대리점 딜러들에 따르면 사전계약을 한 고객들이 차량을 받아보기까지는 3개월 가량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나치게 긴 인도 기간 때문에 두 달을 넘어서면 취소율이 80%에 이르기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국내 생산 기준 변경 및 소극적 태도에 불만
이처럼 물량이 달려 판매가 감소되는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노조 측은 임팔라의 국내 생산을 더욱 강력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 생산에 전향적이어야 할 사측이 오히려 차일피일 논의를 미루는 모습을 보이면서 노사간의 갈등은 폭발 직전까지 이르럿다.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되던 알페온을 단종시키고 임팔라를 도입하기로 한 만큼 노사는 임팔라 출시를 전후로 해서 일정 판매량 이상이 되면 국내 생산을 고려하기로 합의했다. 한국GM은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지만 실제로는 노조 측에 연간 1만대 이상이 팔릴 경우 국내 생산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임팔라가 월 평균 1000대를 가뿐히 넘어서면서 연간 1만대 달성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자 사측이 갑자기 이 기준을 연간 3만대로 바꾼 것으로 전해지면서 노조 측이 폭발했다.
수 차례 철수설에 휘말렸던 한국GM이 GM의 국내 공장 유지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카드인 임팔라 국내생산 방침을 미루고 있다는 불만이다. 가뜩이나 부평 승용2공장과 군산공장 등은 물량 부족으로 가동률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측의 소극적인 태도에 불만을 품은 노조 측은 결국 지난달 임원들이 타는 임팔라의 부평공장 출입을 저지하는 실력행사까지 나섰다. 또한 지난달 말까지 사측에 확실한 입장을 밝히기를 요구했다. 더욱이 올해 초 한국GM은 사무직원의 희망퇴직까지 강행, 노사간 갈등의 수위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한국GM은 기준 변경에 대해 연간 1만대 가량의 판매로는 공장 가동 비용 등의 면에서 생산성과 채산성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GM 측은 “미국보다 엄격한 국내 안전 기준과 연비 규제를 고려할 때 임팔라의 국내 생산이 가능해지려면 추가 투자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조건 상향은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국지엠이 다마스·라보 생산라인을 이전·재설치하는 데에도 200억원가량이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간 3만대 달성을 위해 매달 팔아야 하는 숫자는 2500대 가량이다.
이에 사측은 노사와의 최근 협의에서 기술 검증을 먼저 선행하겠다는 입장을 노조 측에 전달했다. 국내의 연비 규제 정책을 만족시키기 위해 파워트레인 개량이나 새 부품 개발 등이 수반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사측은 이달 말 GM의 전문가 집단에 해당 안건의 검토를 맡기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에 노조 측은 우선 이달 말까지 시간을 갖고 협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또한 제임스 김 사장은 이달 중 미국 디트로이트 본사에서 열리는 GM글로벌 전략회의에 참석해 임팔라의 국내 생산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회의에는 싱가포르에 위치한 GM 해외사업부문과 본사 기술진이 대거 참여한다.
◆갈등은 일단 수면 아래로…일각서는 여전히 의구심
이처럼 겉보기에는 노사가 임팔라 국내 생산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모습이라 노사 갈등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 측도 적지 않게 기대하는 눈치다. 한 노조 관계자는 제임스 김 사장의 요청은 노사간의 대화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한국GM이 지난해 알페온 단종시 부평공장 가동률 하락에 대한 불만을 달래기 위해 임팔라 국내 생산 카드를 언급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흉내만 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10월에는 GM이 과거 대우자동차를 인수할 때 산업은행과 맺었던 특별결의 거부권이 만료된다는 점은 한국GM의 시간끌기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한국GM 지분 17%를 보유하고 있다. 기업의 매각이나 합병·분할 등의 주요 사항은 주주총회의 특별결의 사항이라 최소 33% 이상의 지분이 필요하지만 산업은행은 GM과 주주 간 계약을 통해 33%에 미달하는 지분임에도 특별결의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계약은 내년 10월 만료된다. 이후에는 한국GM이 철수 등의 조치를 취하더라도 딱히 막을 방법이 없어지게 된다. 한국GM의 지난해 말 기준 임직원 수는 총 1만7147명으로 3차협력사까지 포함하면 직간접 고용인원이 11만여 명에 달해 철수시 발생할 파급력이 상당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는 산업은행의 비금융 계열사 및 지분 정리 방침을 천명하면서 한국GM 보유지분도 매각 대상으로 분류한 바 있다.
물론 한국GM 측은 지속적으로 철수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노조를 비롯한 인천 지역 사회에서는 한국GM의 철수를 막을 수 있는 견제장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임팔라의 국내 생산 방침은 이 같은 불안요소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최적의 카드로 평가되고 있다. 그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한국GM이 이달 중으로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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