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플레이, 반도체 장비 제조 업체인 참엔지니어링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창업주 한인수 회장에 문제를 제기하다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전문경영인 출신 최정욱 전 대표 측이 표대결에서 승리, 경영권을 확보하는 파란이 일어났다.
지난 30일 오후까지 수 차례의 파행을 거듭했던 참엔지니어링 42회 정기 주주총회에서 한인수 회장 측이 상정한 최종욱 전 대표의 이사 해임 안건이 부결됐다. 이날 주총에는 의결가능 주식수 2302만1472주 중 67.15%인 1545만8026주가 참석했고, 이중 58.6%인 906만8337주가 해임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아울러 한인수 회장 측의 시도도 모두 무산됐다. 우리사주조합에서 주주제안한 정도순 씨와 이재천 씨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도 부결됐고, 정도순 씨의 임시의장 선임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외부기관에서 추천한 사외이사 조성언, 김구철, 양재찬 씨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도 부결됐다.
반면 최종욱 전 대표 측은 주주제안으로 상정된 박부용, 홍필선, 정문호 씨 3명의 신규 사외이사 선임에 성공, 총 4명의 이사를 확보했다. 한인수 회장 측의 이사는 한인수 회장 본인과 윤영은 이사 두 명만 남게 됐다.
이로써 최종욱 전 대표 측은 참엔지니어링 이사회를 장악하는데 성공,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최종욱 전 대표는 주주총회가 끝난 직후 “그간 회사 안팎의 내홍으로 상처가 많았다”면서 “직원들을 아우르고 주식의 거래재개, 회사 영업 등 현안을 돌보는데 적극 나설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주주총회 종료후 회의장을 찾아온 한인수 참엔지니어링 대표는 최종욱 전 대표에게 “수고했다”며 “회사 경영을 잘 부탁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행 거듭 주총…법적 공방 갈 듯
이날 주총은 파행의 연속이었다.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던 주총은 의결권을 보유한 주주 확인 절차가 늦어지면서 오후 6시에 개최됐다. 지연 시간이 무려 8시간에 달해 같은 날 경영권 분쟁으로 파행이 거듭됐던 신일산업의 4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지연시간이 길어지면서 주주총회 현장에서 일부 폭력 사태가 유발되기도 했다.
창업주 한인수 회장 측은 불법 주주의 의결권 행사 가능성을 언급하며 주총에 참여하기를 거부, 주총 현장에서 철수했다. 이에 따라 이날 주총은 참석주식수 1500만여 주 중 한인수 회장 측의 600만여 주를 제외한 최종욱 전 대표 측의 900만여 주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따라서 한인수 회장 측이 철수한 뒤로는 주총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처럼 파행을 거듭한 만큼 소송으로 이어지는 것은 거의 정해진 수순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지금까지 경영권 분쟁이나 소액주주와의 갈등으로 주총 파행이 발생했던 신일산업, 삼양통상 등도 역시 주총 무효소송이 잇따라 제기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주총 진행 과정에서 한인수 회장 측이 최종욱 전 대표 측의 불법 주주 의결권 행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무효임을 주장했던 점을 감안하면, 역시 경영권 분쟁이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참엔지니어링, 창업주 비리 놓고 갈등 격화

참엔지니어링의 내홍은 지난해 12월 26일 같은 날 상반된 공시를 내면서 세간에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참엔지니어링은 당시 전 대표였던 한인수 회장, 윤정복 상임감사, 김석록CFO에 대해 290억원에 달하는 횡령 혐의가 발생,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공시했다. 한국거래소는 관련 법에 따라 참엔지니어링 주식의 거래를 정지시켰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참엔지니어링은 반대로 한인수 회장과 윤정복 상임감사 등 8명이 최종욱 당시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했다고 공시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한 회사에서 같은 날 상반된 주장이 담긴 공시가 나온 것이다. 이 같은 사연은 나중에 양 측이 공시 담당자 교체를 둘러싸고 벌인 소동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인수 회장 측은 공시 담당자를 교체한 후 맞고소 공시를 내고 이어 3일 후 비리 혐의를 부인하는 공시를 냈다.
이는 전문경영인인 최종욱 전 대표와 창업주인 한인수 회장 간의 내홍으로부터 비롯됐다. 원래는 창업주이자 최대주주인 한인수 회장이 참엔지니어링의 대표였으나 한인수 회장은 지난 9월 국세청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본인은 대표이사를 물러나고 최종욱 사장을 새 대표로 선임했다.
최종욱 대표 측에 따르면 이후 한인수 회장이 전문경영인인 최종욱 대표에게 세무조사를 막아달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해 갈등이 불거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최종욱 전 대표가 횡령·배임 혐의 고소 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사회를 연기하자 한인수 회장은 이를 이사회 거부로 간주, 상법 규정에 의거해 단독으로 이사회를 개최하고 스스로 새 대표로 추대됐다.
공시 담당자를 둘러싼 분란은 이 사태 직후 일어났다. 즉, 한인수 회장 측의 입장에서는 최종욱 전 대표가 대표권이 없는 상태임에도 횡령·배임 혐의 발생 공시를 내 거래 정지를 유발시킨 셈이다. 한인수 회장 측은 자신의 혐의를 내부고발한 임직원 8명을 지난 1월 모두 해고통보했다.
반면 최종욱 전 대표 측은 한인수 회장 측이 업무와 무관한 대표이사 개인용도의 지출, 위장 근로계약 및 위장 성과·격려금 지급, 차명 지배회사의 부실채권 회수를 위한 가장 대출, 가공 임차보증금 및 가공 인테리어 공사 지출, 해외 불법 전환사채(CB) 매수, 과도한 해외컨설팅비 지급, 지티종합건설과 진코퍼레이션 등을 통한 회사 자금 횡령과 업무상 배임 등을 저질러 고소했다고 밝힌 바 있다. 참저축은행 헐값 매각 추진 의혹도 제기됐다.
◆최종욱 전 대표에 소액주주 지지 잇따라

결국 창업주의 전횡을 보다 못한 최종욱 전 대표 측이 경영권 분쟁을 선언하면서 참엔지니어링은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인수 회장 측은 대표권 무권대리행위로 인한 거래 정지 유발과 대표이사 지위 참칭, 기업활동 저해 등을 이유로 최 전 대표를 이사직에서 해임시키겠다고 나섰다.
꾸준히 장외 시장에서 지분을 확보해 온 최종욱 전 대표 측은 지난 18일 총 8.09%를 보유해 최대주주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렸고 특수관계인 2인을 포함한 지분율은 13.27%에 달해 한인수 회장 측의 지분 8.52%를 능가하기에 이르렀다. 최종욱 전 대표 측의 우호지분을 포함하면 확보한 의결권이 40.35%에 달했다.
특히 소액주주들은 창업주 한 사람이 온갖 불법과 거짓으로 회사의 가치를 추락시킨 데 대한 심판이라며 최종욱 전 대표에 대한 지지를 선언, 최종욱 전 대표 측의 지지 지분이 과반을 넘기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최종욱 전 대표에 유리하게 돌아가던 상황은 법원의 판결로 제동이 걸리는 듯했다. 주총을 3일 앞둔 지난 27일 한인수 회장 측이 최종욱 전 대표의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결정을 따내면서다.
법원은 최종욱 전 대표 측이 확보한 8.09%의 지분과 다른 채권자 이모 씨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했다. 한인수 회장 측은 이들이 확보한 주식이 한인수 회장이 담보로 내놓은 주식이기 때문에 의결권 행사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주총에서의 표대결 양상 흐름이 주목받았지만 결국 압도적인 소액주주들의 지지 속에 한인수 회장 측이 완패했다.
◆표대결 끝났지만…해결 과제 산적
수 달여간 계속된 분쟁 속에 표대결은 마무리됐지만 참엔지니어링은 앞으로 회사 내부적인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 있다.
내부고발 임직원들을 포함한 많은 직원들은 한인수 회장 측의 불법·거짓에 회사가 망가지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며 최종욱 전 대표 측을 지지하고 있지만, 팀장급 이상 간부들 30여명은 적대적 인수합병에 반대하며 최종욱 대표가 다시 회사에 들어오면 전원 사직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이들 30여명은 회사에서 연구개발과 생산·해외영업·국내영업 파트에 근무하는 이 회사 핵심 보직자들이다.
뉴질랜드 영주권자인 한인수 회장의 구속 수사가 이뤄질지도 관심거리다. 지난 1월 내부고발 임직원들은 한인수 회장이 증거를 인멸하고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검찰에 한인수 회장의 구속 수사를 촉구한 바 있다. 이밖에 정지된 회사의 주식 거래의 재개도 조속히 해결돼야 할 과제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