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지난해부터 중점적으로 추진해 온 경제활성화 법안 중 관광진흥법 등 6개가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6일에도 통과가 사실상 무산돼 장기 표류 가능성이 높아졌다.
6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4월 임시국회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지만, 관광진흥법 등 6개 경제활성화법안은 이번에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게 돼 6월 임시국회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정계에서는 사실상 이번 임시국회를 상반기 마지막 ‘법안국회’로 보고 있는 만큼, 이들 법안은 하반기로 넘어갈 공산이 커졌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은 “4월 국회는 실질적으로 올해 마지막 법안국회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법안 처리에 적기였다”며 “경제활성화법 중 상당수가 또 다음 국회로 밀려나게 돼 유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정부와 여당이 처리를 읍소해온 경제활성화법안은 총 30개에 달한다. 이중 현재 국회에 남은 것은 9개로, 이번 임시국회에서 여야가 처리를 합의한 크라우딩펀딩법, 하도급거래공정화법, 산업재해보상법은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라 남은 것은 관광진흥법 개정안, 경제자유구역특별법 개정안, 금융위원회 설치법 개정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 의료법 개정안 등 총 6개다.
◆관광진흥법 개정안, ‘땅콩회항’ 직격탄
여야가 팽팽히 맞붙고 있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2012년 10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땅콩회항’의 직격탄을 맞아 이번 임시국회 뿐 아니라 향후에도 통과가 불투명하다.
소위 ‘대한항공의 경복궁 옆 호텔’로 불리는 이 법안은 1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관광호텔을 학교 200m 이내인 학교정화구역에 신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활성화법안 중에서도 관광진흥법의 통과를 우선적으로 강력히 요청히 요청하기도 했다.
관광업계는 서울에 모자란 숙박시설 객실의 확보를 위해 중저가 비즈니스호텔 확충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이 법안의 통과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지만, 대한항공이 풍문여고, 덕성여중, 덕성여고와 인접한 경복궁 인근 송현동 부지에 7성급 관광호텔을 추진하면서 이 법안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대한항공 특혜법’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가세, 경복궁과 인접한 해당 부지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여론의 반대도 거세다. 관광업계와 정부·여당은 해당 법안이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 호텔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해당 호텔 신축을 주도한 인물이 ‘땅콩회항’의 조현아 전 부사장이었다는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야당이 강력히 반대해 당분간 통과가 힘들 전망이다.

◆‘의료민영화’ 논란에 서비스기본법·의료법 등 3법 표류
지난 2012년 7월 국회에 제출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의료민영화와 맞물려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친 상태다.
대표적인 ‘일자리 법안’으로 불리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추진과 연계된 법으로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서비스산업 선진화위원회를 만들고 5년마다 서비스산업발전 기본계획을 수립, 서비스산업에 규제 완화 및 지원을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현 정부의 경제활성화법안 1호다.
하지만 해당 법안이 포함하는 서비스 분야에 ‘의료·보건’ 분야가 포함되면서 의료민영화를 위한 사전계획이라는 논란이 불붙었다. 야당은 이 법안을 ‘의료민영화 법안’으로 명명하며 “투자개방형 병원 등 의료영리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물론 서비스산업발전법의 경우 의료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법안은 아니다. 그러나 의료서비스가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되면 보건·의료정책 결정의 주도권이 보건복지부와 의료계가 아닌 재정부처와 경제계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 여당이 ‘의료’부분을 제외하거나 ‘의료민영화’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는 등의 수정안을 제시하며 통과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여당 내에서 핵심인 의료 분야를 제외하면 법안이 통과되도 의미가 없다는 기류가 형성되면서 결국 4월 임시국회에서는 이마저도 성사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 의료 분야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 역시 의료민영화 논란에 가로막힌 상태다.
의료법 개정안은 원격의료 및 원격진료 부분에서 가로막혔다. 여당은 환자들의 편의와 건강을 위한 방안으로 보건·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은 원격진료가 의료영리화의 전초 단계로 규정하고 맞서 결국 이번에도 통과가 무산됐다.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은 민간 보험사의 해외환자 유치활동 허용, 외국관광객이 이용하는 공항 등의 장소에 외국어 의료광고 허용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민간 보험사의 해외 환자 유치 부분에서 보험사가 외국인 환자를 상대로 국내 의료기관의 진료를 보장하는 보험상품을 팔도록 허용, 보험사와 의료기관 간의 진료비 직불계약이 전제됐다.
야당은 이 같은 방식이 미국식 의료민영화로 확대될 우려가 크다며 역시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도 의료민영화를 위한 전초단계라고 규정,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지난 달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는 “의료 규제를 그렇게 풀면 의료보험 체계 자체가 무너져내리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며 반대 방침을 천명했다.
◆카지노 활성화, 금융소비자 보호방안도 여야 대치 ‘팽팽’
이밖에 외국인의 카지노 사업 진출을 원활하게 해주는 경제자유구역특별법 개정안도 사행성 산업을 통한 옳지 못한 경제활성화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 법안은 외국인 카지노 사업 허가에 대한 사전심사제를 공모제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야당은 “현행법으로도 이미 카지노에 대한 허가가 가능하다”며 이 법을 ‘반드시 저지해야 할 법안 5개 중 하나’로 발표하기도 했다.
쟁점은 역시 카지노 산업의 활성화 여부다. 야당은 “인천경제자유구역에 2개의 카지노 사업자를 정부가 허가해준 사례도 있다”면서 이미 현행법으로도 카지노 설치가 가능한데 굳이 카지노의 활성화까지 지원해야 하느냐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카지노를 육성하는 것이 증세 없는 경기 부양 노력의 일환이라며 통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자유화구역 내 카지노는 외국인 전용이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즐길거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아울러 금융위원회설치법은 정부 부처간 이견으로 통과가 무산됐다. 이 법안은 금융소비자의 권익 강화를 위해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의 금융감독원에서 소비자보호 기능을 떼어내, 금융상품 판매 인허가에서 소비자 분쟁조정까지의 전 과정을 다루는 신설기구를 만들어 독립적인 금융소비자 보호기구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이 법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저축은행 부실, 동양그룹 사태, 개인정보 유출 등 금융사고가 잇따르면서 무난한 국회통과가 기대됐지만, 여당과 야당의 대립에 정부 부처간 교통정리까지 난항을 겪으면서 표류가 장기화되고 있다.
여야는 기본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합의했지만, 세부 내용에서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야당은 금융감독원에서 소비자보호 기능을 떼어내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설치하는 원안에 더해, 상위 기구 격인 금융위를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의 상위 기구로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를 만들어 국회에 인사·예산권을 부여하고 금융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자는 안을 제시했지만, 정부와 여당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여기에 기능 분리의 타깃으로 지목된 금감원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 측은 “현 체제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만 신설하면 결국 금융위의 권한만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며 “일각에서는 금융위가 금감원을 견제하려고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만드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반발했다. 야당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논리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