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외환은행의 통합에 적신호가 켜졌다. 하나은행이 통합은행명에 ‘외환’이나 ‘KEB’를 포함시키겠다고 제안했지만, 외환은행 노조 측은 “새로운 제안이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법원은 “무엇이 은행산업을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라”며 다음달 3일까지 쟁점이 되는 사안을 요약해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통보하는 한편,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이에 따라 양측은 대화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낙관론보단 비관론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편, 금융권에서는 이미 통합이 이뤄진 해외 통합 점포와 하나카드 등의 합병 시너지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하나 “통합은행명에 ‘외환’ 또는 ‘KEB’ 포함”
하나금융이 하나와 외환의 통합은행명에 ‘외환’이나 외환은행을 상징하는 ‘KEB’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외환은행 노조는 “새로운 것이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모양새다. 15일 법원의 판결을 통해 새 전기를 맞을 것으로 기대됐던 하나·외환 통합에 또다시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 15일 하나금융은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가처분 이의신청 2차 심리에서 은행명 유지와 고용안정 등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합의 제안서를 제시했다.
새로운 합의 제안서의 핵심은 통합은행명에 '외환' 또는 외환은행의 영어 약자인 'KEB'를 포함한다는 데 있다. 인수당하는 은행의 브랜드를 유지하는 건 은행권에서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나금융은 설명했다. 인원감축과 인사상의 불이익도 없다고 명시했다. 임금 및 복리후생을 그대로 유지하고, 전산통합 전까지 양 행간 직원의 교차발령도 금했다. 직원 연수와 교육프로그램 투자 확대도 약속했다.
이날 하나금융 측 변호인은 “노조 요구에 따라 지난달 29일 ‘2·17 합의서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9월 말까지 조기 통합을 제안했다”며 “이는 이 시기까지 합병하면 발생하는 2750억원 규모의 등록·면허세 감면혜택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수정안에 △인위적 구조조정 없는 고용안정 △근로조건 유지·개선 △통합은행 이름에 외환 및 KEB 포함 △조기 통합 시너지 공유를 위한 이익배분제 도입 등을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노조가 그 수정안을 반송해 사측이 올해 말까지 합병하는 방안을 다시 제시했을 뿐 아니라 노조 요구대로 기존 합의서와 수정안 문구를 일일이 비교하는 양식도 냈다”며 “노조는 새로운 수정안을 제시하라고 할 뿐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대안을 준비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조 측 변호인은 “시간을 더 주면 대안을 제시하겠다”면서도 “환경이 변화됐다고 이해관계자 사이의 약속(5년 독립경영)을 어기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리먼브러더스 등이 규모 키우기로 무너졌다”며 “미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합병이 바람직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사측 변호인은 “4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인수한 경영진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며 “은행 통합은 경영권의 본질에 속하는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외환노조 측은 새로운 제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노조 핵심 관계자는 “새로운 제안이 없었다. 2·17 합의를 준수하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하나금융 측의 제안은 합병에 대한 일방적인 동의를 요구한 것일 뿐”이라며 “새로운 내용을 제안하면 다시 대화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2·17 합의서'는 하나금융이 2012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사들이면서 노조와 맺은 합의 사항으로,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5년간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 외에도 교차발령·구조조정 금지, 근로조건 개선 등의 내용을 담았다.
한편,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용대 수석부장판사)는 다음 달 3일까지 쟁점이 되는 사안을 요약해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양측에 통보하는 한편, 대화 재개도 권고했다. 재판부는 “통합절차 중단 가처분 최종 결과와는 별개로 무엇이 은행산업을 위하는 길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의아하다”, “(가처분 이의신청의) 결정과 별개로 무엇이 은행산업을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추가 심리 없이 양측 자료를 검토한 뒤 다음 달 안에 법원의 하나·외환은행 통합절차 중단 가처분 결정이 타당했는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대화단 협상 재개…‘낙관론’보다는 ‘비관론’
이에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동조합은 대화단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은 전일 오후 외환노조 대화단 측에 이날부터 대화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외환노조는 아직 확답은 안했으나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노조 관계자는 “법원에서 대화의 진전이 없다고 판단해 시간을 더 줬기 때문에 대화에 나설 의향은 충분히 있다”며 “이 자리에서 새로운 요구 내용을 추가한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측은 2차 심리 당시 공개한 새로운 '2.17 합의 수정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예정이다.
하나금융은 수정안에서 △통합은행명에 'KEB' 또는 '외환' 명칭 반영 △고용안정 △근로조건 유지 및 개선 △임금수준과 복리후생 유지 개선 △전산 통합 전까지 교차발령 금지 △조기 통합 시너지 공유 등의 카드를 제시했다.
노조는 이에 대해 하나금융이 행명에 ‘외환을 포함하겠다’고 약속한 바 없으며, 통합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한 사안이고 대화단의 협상 대상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5년 독립 경영을 보장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에도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임종룡 위원장은 지난 3월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2·17 합의서를 존중해 조기통합이 필요할 경우 노조의 동의를 얻어 추진해야 하고, 그래야 예비인가를 내줄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원이 기존의 입장을 그대로 가져간다면 하나금융은 더욱 궁지에 몰릴 수 있다”며 “사측 입장에선 남은 보름 동안 노조 설득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내달 중순으로 예정된 가처분 결정 이전까지 양측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끌어 내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법조계의 전례에 비춰볼 때 가처분 결정이 이의신청을 통해 뒤집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설령 재판부가 이의신청을 용인한다 해도 통합 절차에 난관이 상당하기 때문에 여전히 협상의 주도권을 노조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통합은행명 외환은행의 명칭을 사용하겠다는 등 비교적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측의 수정안에 대해 노조는 여전히 평가절하하고 있어 입장 차이를 좁히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편 하나금융은 이번 수정안과 관련, 외환은행 노조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것은 물론 하나은행 노조에서도 항의를 받으면서 난처한 상황이다. 하나금융 한 관계자는 “통합은행 명칭 등에 대해 하나은행 노조로부터 '통합의 또 다른 대상자로서 일방적인 사측의 일방적 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등의 항의를 받았다”며 “하나은행 노조도 이해당사자인 사항인 만큼 충분히 사전교감하는 등의 절차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외환은행 내부도 노사 갈등으로 ‘시끌’
이런 가운데, 외환은행 내부에서도 노사 간 갈등의 골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 외환은행이 임직원 개인정보 수집 논란에 휩싸인데 이어 이번에 일부 직원들의 사내 우편함 메일을 동의 없이 복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자 노조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20일 외환은행 경영정보보호 태스크포스(TF)가 지난달 말 IT시스템운영부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TF는 일부 직원에 대해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사내 우편함 메일을 복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TF가 하나·외환은행 중국 법인의 통합계획 등 중요한 영업비밀이 외부에 유출된 것으로 보고 내부적으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업무와 관련된 직원들의 인트라넷 메일에 대해 보존을 요청했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외환은행은 “복구 요청 공문은 유출 경로에 대한 조사를 위해 보존 조치를 취한 것에 불과하다”며 “영업비밀 유출사고 발생시 대상 직원의 ‘행내 업무용 전자우편함’을 조사하는 것은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모범규준에 따른 업무수행’”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열람에 대해서는 “대상 직원들로부터 동의를 받아 본인 입회하에 함께 열람해 직원의 개인정보권을 보호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외환은행 노조는 “사측이 스스로 이번 사건의 진실을 낱낱이 밝히기 바란다”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메일 복구와 열람을 지시했고 실제 어느 정도로 진행됐는지 과거 언제부터 이메일 복구와 열람을 해왔는지 명명백백 밝혀야 한다”고 반박했다.
노조는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응당 책임을 지고 두 번 다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앞서 외환은행이 임직원들을 상대로 건강정보와 CCTV 촬영정보, 노조 가입 정보 등을 필수정보로 포함시킨 개인정보 수집이용 제공 동의서를 받은 사실이 지난 13일 알려져 노조의 반발을 샀다.
이후 김한조 외환은행장이 직접 기자간담회를 열고 “2011년 9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에 따라 제정된 동의서”라며 의혹을 전면 반박한 바 있다.
◆금융권, 하나-외환 통합 시너지에 주목
한편, 금융권에서는 이미 통합이 이뤄진 해외 통합 점포와 하나카드 등의 합병 시너지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 해외 점포 통합의 경우 합병 시너지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는 해당 국가의 금융감독규제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애초 현지 영업 기반이 탄탄했던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병함으로써 시너지 효과가 더욱 극대화됐다는 평가다.
특히 지난해 12월 출범한 중국하나은행은 올 한 해 여신 약 5조원(전년대비 59% 증가), 예금 약 7조 3000억원(35% 증가), 순이익 약 300억원(약 56% 증가) 등으로 통합관련 강력한 시너지 창출이 예상된다.
중국하나은행 측은 하나-외환은행 통합에 따른 증가된 영업기반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기존 고객대상의 영업강화는 물론 현지 중소기업 및 리테일, IB·무역금융 강화 및 온라인 뱅킹 확장 등을 통해 2025년에는 중국 내 외자계 은행 중 탑5의 목표(자산규모 약 41조원, 순이익 2300억원)을 달성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해 12월 외환카드와 통합한 하나카드도 시장점유율에서 롯데카드를 추격하며 선방하고 있다. 앞서 통합 이전 하나카드의 개인신용판매 점유율은 4.6%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 1분기 통합 하나카드의 올 1분기 개인신용판매(일시불+할부) 결제액은 약 6조 9200억원으로 8개 전업계 카드사 가운데 6위를 차지했다. 취급액 기준으로는 업계 전체(약 86조 2600억원)의 8.0% 수준으로 5위인 롯데카드(8.7%)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통합 효과로 올 1분기 8%대로 올라선 셈이다. [ 시사포커스 / 정주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