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국회, 누가 몽니 부리나?
청와대와 국회, 누가 몽니 부리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靑, 국회의장 중재안도 거부…정국 혼돈 예고

▲ 국회법 수정안을 놓고 청와대와 국회, 또 여당 내부적으로 전방위 갈등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가 거듭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힌데 따른 것으로,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사실상 대통령 재신임 성격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뉴시스
정부의 세월호 시행령 개정 문제를 두고 시작된 ‘국회법 개정’ 논란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국회가 정부의 시행령에 대한 수정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청와대는 국회가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함으로써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며 강하게 반대 입장을 표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정부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다면서 절대 수용 불가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며,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는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에 부쳐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만일 재의결을 통해 부결된다면 여당 지도부가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될 것이고, 통과가 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 예상된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 재신임 성격을 갖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 청와대가 정의화 국회의장의 국회법 중재안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하지만, 정 의장은 강제성을 거의 없앴기 때문에 청와대가 재의 요구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시스

지난 15일, 정의화 국회의장은 여야 원내대표와 함께 국회법 개정안의 문구 중 ‘정부의 시행령에 대해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문구를 ‘요청할 수 있다’로 바꾸는 데 합의하고, 수정된 국회법 개정안을 정부로 이송했다. 요구할 수 있다는 문구가 가진 강제성을 약화시켰다는 평가다.

당초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중재안을 수용하는 데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열고 정의화 의장의 중재 노력과 국회 정상화 필요성 등을 받아들여 중재안을 수용키로 했다. 이와 관련, 이종걸 원내대표는 “국민들은 (국회법 개정안 논란을) 정쟁으로 보는 것 같다”며 “청와대와 국회가 힘을 합쳐 메르스 등 국민의 고통을 해결하고 정쟁을 완화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거부권과 관련해 “이렇게까지 했는데 거부권은 행사되지 않으리라 기대한다”며 “만약 거부권이 행사되면 이런 진정성 있는 노력들을 무위로 돌리려는 또 다른 의도라고 생각하고 적극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정의화 의장의 중재안 중 ‘처리한다’라는 부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아쉽다”면서도 “요구를 요청을 바꿔 정부에서 걱정하는 강제성이나 위헌 가능성을 국회에서 줄이려고 노력했다. 이 문제로 행정부와 국회가 갈등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의화 의장 역시 기자들과 만나 “우리 정치가 힘들더라도 참고 기다리면서 대화하고, 그렇게 또 타협을 이뤄가는 모습에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든다”며 “굉장히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 국민들이 희망을 가져도 좋지 않겠나 생각해본다”고 자평했다.

◆與 계파갈등 다시 활활
하지만, 청와대는 국회의 이 같은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려버리고 말았다. “입장이 바뀐 것은 없다”면서 거부권을 행사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둔 것. 이와 관련,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6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회법 개정안 중재안은)한 글자를 고쳤다”며 “그렇다고 우리 입장이 달라질 수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민 대변인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 등 향후 대응과 관련해 “지금으로서는 결정된 게 없다”며 “거부권의 행사 시기나 구체적인 것은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가 이 같이 완강한 입장을 밝히고 나서자 야당은 제쳐두고 여당 내부적으로 갈등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친박계가 청와대의 입장을 옹호하고 나선 반면, 친이계 비주류는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여권의 계파갈등이 또 다시 터져 나온 것이다.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 복심으로 통하는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은 여야는 물론, 국회의장까지 싸잡아 비판하고 나섰다. 이정현 최고위원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잘 알다시피 이건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당청 간의 문제도 아니다”며 “14대 국회에서부터 금년 5월 2일에 이르기까지 선배국회의원들도 똑같이 이 문제를 다뤄왔다”며 “그러나 이번에 결론을 내지 않은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위헌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최고위원은 거듭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다 똑같이 다뤄졌지만 만들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다. 국회가 헌법을 위반하고 위배하는 법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 하나만 봐도 야당은 강제성이 있다고 얘기하고, 여당은 없다고 한다. 국회의장은 (강제성이)약화됐다고 얘기한다”며 “한 가지 법을 가지고 여야와 국회의장 입법부가 모두 애매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런 법을 만들어서 넘겨 행정부가 집행하면 현장에서 국민들은 야당, 여당, 국회의장 어떤 입법취지에 따라야 하냐”고 반문했다.

이 최고위원은 “내년이면 국회가 70년이 되는데, 애매모호하게 법을 만들어서 독려하면 입법부에 대해 국민들이 신뢰를 가지겠냐”며 “국회에서 입법하고 국가예산 확정하는 두 가지 기능을 하는데, 애매모호하게 법을 만들어 넘기고 알아서 집행하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이정도 하나는 정리할 수 있는 국회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자리에서 친이계 정병국 의원은 청와대를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정 의원은 이 자리에서 “국회법 문제로 이런저런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과정이야 어찌됐든 87% 여야 합의에 의해 통과된 법”이라며 “그럼에도 일각에서 특히 청와대에서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에 국회의장 중재 하에 여야 합의로 수정안을 만들어 정부로 이첩하는 등 국회에서는 나름대로 성의를 다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갖고 일각 청와대 비서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도저히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며 “글자 하나 고쳤을 뿐이니 어쩌니 하면서 입법부를 비아냥거리는 것은 이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 문제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처리되거나 진행돼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정치를 해야할 때”라며 “서로 그 법이 문제가 있다고 하면 헌법쟁의소송 등의 절차를 밟으면 된다. 이 문제로 정치판을 깨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정치판이 깨지면 이 메르스 사태로 인해 무너져 내린 경제를 어떻게 하려고 하냐”며 “좋든 싫든 야당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데 과연 그게 원활하게 될 것이냐”고 경고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아울러, 정 의원은 “당내 불만과 당청 갈등은 어떻게 풀어가려고 하냐”면서 “이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길 간곡히 우리 당 지도부나 청와대에 말씀 드린다”고 강조했다.

▲ 청와대가 완강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여당 내 갈등 상황도 깊어지고 있다. 청와대를 옹호하는 친박계와 청와대를 비판하는 비주류 간 갈등이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다. ⓒ뉴시스

◆靑도 고심할 수밖에…
이런 가운데, 실제로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와 청와대 간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총선까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당청 불협화음은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 탈당론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럴 경우 당내 갈등도 더욱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유승민 원내대표 책임론이 거세게 제기되며 사퇴 목소리까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선 유 원내대표가 야당 원내지도부와의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다.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유 원내대표가 지난번 야당과 공무원연금법 협상을 하면서 야당이 자꾸 다른 것을 들고 나오니, 청와대가 보기에도 협상력이 없어 보인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유 원내대표도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시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하지만 국회와 청와대 간, 또 당내 갈등까지 격화되는 상황에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친박계 의원은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안 할 것이란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친박계 의원도 “청와대도 국회법 개정안에 위헌성이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라며 “거부권을 당장 행사하지 않고 여론의 추이를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의화 국회의장 역시 같은 날,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대해 “강제성을 거의 없애고 보냈기 때문에 이의서를 쓰기 어려울 것”이라며 “(재의 요구가) 안 오겠지 싶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그냥 재의요구를 하는 게 아니고 왜 재의를 해달라는지 써와야 한다”며 “그러려면 법리적으로 합당한 이야기가 있어야 할 텐데 내가 강제성을 거의 없애고 보냈기 때문에 아마 이의서를 쓰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판단이 서면 재의 요구를 못 한다”고 설명했다.

정 의장은 이어, 전날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통화한 사실을 밝히며 “완강하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 의장은 “그건 어제 상황이고 보름 동안 법적인 검토를 할 것 아니냐”며 “강제성이 없는데 위헌성이 있다고 말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 의장은 그동안 거부권 행사 입장을 가지고 있던 청와대가 법적 검토 과정에서 생각이 달라질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내 희망사항”이라고 장담하지는 못했다.

◆野 “메르스와 싸우라니, 정쟁 몰두”
야당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17일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대표는 “우리 당은 국가적 위기 앞에서 정쟁을 피하기 위해 국회법 개정안을 대승적으로 결단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회의 노력을 무시하고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메르스 컨트롤 타워는 하지 않으면서 정쟁의 컨트롤 타워를 자초하는 그런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문 대표는 “국민들은 민생을 외면하고 정쟁에 몰두하는 청와대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청와대를 비롯해 정치권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메르스 대란과 가뭄에 따른 피해상황들을 지원하는 대책마련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우리 당은 6월 국회에서 정쟁이 아닌 민생에 전념할 것을 제안했다”며 “그러나 정부와 새누리당은 여전히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야당의 대승적 결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국회의장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여전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승희 최고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와는 안 싸우고 정말 정쟁에만 몰두하시는 것 같다”며 “여야가 초당적으로 정의화 의장의 국회법 중재안에 동의했는데, 이것마저 거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유 최고위원은 이어,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메르스는 안 잡고, 국회를 잡고 있는 것에 대해 ‘현재 권력이 미래 권력을 견제하고 있는 것 아닌가’, ‘레임덕을 막기 위해 여의도 내에 호위무사를 통해 여당 내 권력다툼에 몰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한 잡지가 있다”며 “상위법 위의 원칙은 법률체계에 있어서 가장 기본 아닌가. 원칙을 바로 잡고 법률체계를 지키려고 하는데, 마치 나라가 망하고 헌법이 흔들리는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청와대의 형태는 정말 납득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한편, 고심이 깊어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회법 개정안에) 강제성이 있다는 게 대세”라면서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18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이 말하며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입법을 하면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입법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그래서 우리도 위헌소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다수의 헌법 학자들이 위헌성이 있다고 이야기해 난감한 상황”이라며 “분명히 강제성이 없다는 생각으로 찬성했는데 자구 분석에 강제성이 있다는 게 대세이기 때문에, 또 야당에서도 자꾸 강제성이 있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다. 어쟀든 시국을 잘 풀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덧붙여 “대통령 입장에서 좋은 뜻으로 국회에서 입법을 해왔는데 위헌성이 분명한데 결재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면서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 모두가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지, 서로 이 문제를 가지고 잘 한다 잘못 한다 따질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제는 누구의 주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통과시킨 법이 위헌성이 있느냐 없느냐 여부의 판단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사포커스 / 정흥진 기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