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총괄회장 여동생 신정숙씨, 법원에 성년후견인 지정 요청

21일 법조계 및 업계 등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의 여동생인 신정숙씨는 지난 18일 서울가정법원에 신 총괄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했다.
성년후견인제는 질병·장애·노령 등에 따른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법원이 의사를 대신 결정할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제9조에 따라 가정법원이 피성년후견인을 선고한다.
이는 신 총괄회장의 여동생 신씨가 “오빠가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으며, 가족 간의 분쟁 마무리를 위해 후견인을 세워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는 말이다.
성년후견인이 지정될 경우, 신 총괄회장의 재산 관리 등의 권리는 법원이 지정한 성년후견인이 갖게 된다. 사실상 신정숙씨가 신 총괄회장의 법률상 대리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날 신정숙 씨를 대리한 이 모 변호사는 “93세 고령인 총괄회장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건강이 좋지 않은데, 최근 가족 간 논란으로 불미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보다 못한 신청인(신정숙씨)이 성년후견인 신청에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 판단에 형제의 운명 좌우될 듯
업계의 관심은 신동주 SDJ 코퍼레이션 회장이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명분을 잃게 될지, 아니면 반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지 여부로 쏠린다. 법원의 판단을 기점으로 향후 경영권 분쟁의 향방이 좌우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번 신청에 따라 신 총괄회장의 건강 상태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의 정신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볼 경우 신동주 회장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간 ‘경영 지시서’와 ‘위임장’ 등을 공개하며 자신이 롯데가 후계자임을 밝힌 신동주 회장이 불리한 상황에 놓일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신동주 회장이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부친인 신 총괄회장이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신동주 회장이 신 총괄회장의 뜻을 앞세워 한국과 일본에서 진행하고 있는 법적 싸움에 명분을 잃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영권 분쟁에서 신 총괄회장의 판단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법원에서의 결정은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법적 공방에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대로 법원이 신 총괄회장의 정신 건강에 대해 ‘이상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신동주 회장 측이 힘을 얻을 수도 있다.
신정숙씨의 청구 소송은 자연스럽게 기각됨과 동시에 신 총괄회장의 판단력이 멀쩡하다는 한국 법원의 공신력을 얻을 수 있다. 일본에서 진행하고 있는 법적 공방에서도 한국 법원의 판단을 근거로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
◆“건강 이상 없다” vs “심신 허약한 상태”
신정숙씨가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하기 전까지 두 형제는 아버지의 건강을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여왔다.
그동안 장남인 신동주 회장은 “아버지의 건강 상태는 이상이 없다”며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갖고 있으며, 나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고 밝혀왔다. 이 같은 명분으로 자신이 롯데가 후계자임을 주장했다.
더욱이 지난 10월에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직접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까지 밝히는 등 한동안 논란이 되던 ‘건강이상설’을 불식시키기도 했다.
반면 신동빈 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이 고령으로 인해 기억력과 판단력이 떨어진 상태”라며 “(신동주 SDJ 회장이) 고령인 아버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반박해왔다.
롯데그룹은 신 총괄회장이 심신이 허약해진 상태라며, 언론에 공개된 모습 또한 조심스러우나 일시적이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고령인 아버지를 내세워 롯데가(家) 경영권을 흔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이 고령으로 판단이 흐려진 신 총괄회장을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가려는 모습”이라며 “지난번은 물론 이번에도 고령인 총괄회장을 이용하는 것은 도를 넘는 행위”라고 말했다.

◆갑작스런 청구 왜?…재계, 경고성 의미 해석
그렇다면 왜 신정숙씨가 갑작스럽게 피성년후견심판 청구를 한 것일까. 재계는 신정숙씨가 신동주·동빈 형제간 벌어지고 있는 경영권 분쟁을 끝내기 위해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분쟁의 중심인 신동주·동빈과 함께 후견인 대상으로 그동안 중립적인 입장을 밝혀 온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와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등을 함께 지목했다.
재계에서는 ‘더 이상 아버지를 욕보이지 말라’는 고모의 경고성 의미로도 해석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의 개인 생활이 언론에 공개되는가 하면, 신 총괄회장을 두고 두 아들 간의 고소·고발이 이어지는 등 진흙탕 싸움을 더 지켜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SDJ 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은 절대 성년 후견인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평소 왕래가 없는 여동생이 이번 성년후견심판을 신청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번 신청에는 배경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경계했다.
한편 신정숙씨는 최현열 전 NK그룹 회장과 결혼 후 별다른 외부 활동 없이 조용히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장녀인 최은영 유수홀딩스(전 한진해운홀딩스) 회장은 고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과 결혼했다.
차녀 최은정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내동생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둘째아들 정몽익 KCC 사장과 결혼한 인물로 전해졌다. [시사포커스 / 신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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