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베팅으로 승리 따내…승자의 저주 우려는 부담

24일 KDB산업은행은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이사회를 열고 대우증권 및 산은자산운용 패키지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 구성된 미래에셋컨소시엄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본입찰에서 미래에셋증권이 제시한 인수가는 2조4500억원 가량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력 후보였던 KB금융과 다크호스 한국투자증권은 2조원대 초반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미래에셋증권의 과감한 승부수에 밀렸다. 대우증권 우리사주조합은 산업은행의 최저 매각 기준가를 하회하는 가격을 적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구조조정을 우려한 노조의 반대나 주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래에셋증권은 박현주 회장의 통 큰 베팅으로 승리를 거머쥔 것으로 평가된다. 산업은행 역시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서 “비가격요소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겠느냐”면서 가격 요소가 가장 중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과감 행보 이어간 박현주 회장의 승부수
미래에셋증권은 내년 5월경 대우증권 인수를 마무리한 후 자산규모 8조원의 초대형 증권사로 거듭나게 됐다. 현 1위인 NH투자증권의 4조4954억원을 압도하는 규모다. 미래에셋증권은 대우증권을 인수한 후에 1년 간 별도로 운영하고 2017년 통합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인수전을 통해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인 미래에셋그룹 박현주 회장의 과감성이 재차 주목받고 있다.
박현주 회장은 1986년 유안타증권(구 동양증권)에 입사하면서 증권업계에 입문했다. 이후 한국투자증권(구 동원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1990년 32세의 나이로 전국 최연소 지점장 타이틀도 얻었다.
1997년 미래에셋캐피탈을 세우고 다음 해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한 박현주 회장은 국내 최초의 뮤츄얼펀드 박현주 1호를 선보이고 신화를 써내려갔다. 은행 예금 위주의 저축문화를 적립식 펀드 위주로 변화시킨 일등공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산운용계에서 박현주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특히 2003년에는 국내 자산운용사 중 처음으로 홍콩에 해외법인을 설립했고 이후 인도와 미국, 브라질 등 적극적인 해외 개척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 대우증권 인수에 과감한 베팅을 한 것도 자기자본이 24조원에 달하는 아시아 1등 일본 노무라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박현주 회장의 야심찬 포부의 일환으로 읽히고 있다.
대우증권을 품에 안은 미래에셋증권은 2020년까지 자기자본 10조원, 세전이익 1조원, 세전자기자본이익률(ROE) 10%를 달성한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산업은행 역시 국내 자산관리의 선두주자인 미래에셋과 증권계의 사관학교로 불리는 대우증권이 막대한 시너지를 내 국내 증권산업에 긍정적인 흐름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각종 금융 거래에서 1위 증권사로의 면모가 발휘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기업상장이나 M&A 관련 업무에서 시장점유율을 늘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부채비율이 더 낮은 대우증권을 품에 안으면 부채비율을 낮추는 부수적인 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현주 회장은 “자본시장의 혁신자로 성장해 온 미래에셋과 업계 최고인 대우증권의 장점을 잘 결합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며 “향후 투자 활성화를 통한 한국 경제 역동성 회복과 글로벌 자산배분을 통한 국민 노후준비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승리한 것에 대해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덩치가 큰 대우증권을 무리한 가격으로 인수하고도 마땅한 성과가 나지 않으면 향후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일단 이번 미래에셋증권이 제시한 2조4000억원이라는 금액은 적절성 측면에서 의문을 낳고 있다.
이번에 미래에셋증권은 대우증권 장부가인 1조7758억원에 7000억원에 가까운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였다. 당초 산업은행은 최소 30%가량의 프리미엄이 붙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미래에셋증권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 40%의 프리미엄을 붙이는 과감한 베팅을 한 셈이다. 현 주가 기준으로 실제 지분 가치가 1조4000억원 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프리미엄은 1조원으로 불어난다.
증권가는 과거 우리투자증권 인수 사례와 비교하며 미래에셋증권이 지나치게 비싸게 산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NH투자증권은 NH농협증권 시절 덩치가 훨씬 큰 우리투자증권 지분 38%와 경영권을 9500억원에 매입하고 업계 1위로 올라섰다. 프리미엄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전문경영인 체제인 KB금융이 과도한 금액을 베팅하지 못한 것에 비해 오너기업인 미래에셋증권이 박현주 회장의 뜻에 따라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논란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번에 미래에셋증권은 대우증권 인수를 위해 1조원 가량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고 인수금융까지 동원했다. 현금성 자산 3715억원과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한 1조원 가량에 대우증권 주식을 담보로 한 8000억원 규모의 인수금융 대출도 받는 구조다. 유상증자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기존 사업에까지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실제 대우증권의 순이익은 2000~3000억원에 불과하다. 증권업계 전체로 봐도 업황 부진에 따른 한파가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지난 9월 갑작스러운 대규모 유상증자 방침이 나왔을 때 미래에셋증권 주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당시 유상증자 발행액이 2만1750원이었던 것에 비해 24일 미래에셋증권 주가는 2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유상증자에 참여한 주주들이나 우리사주 물량을 매입한 미래에셋증권 직원들은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노조, 구조조정 우려에 총파업까지 불사

특히 지속적으로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인수를 반대해 왔던 대우증권 노조는 더욱 들끓고 있다. 앞서 지난 10월 대우증권 노조는 한국투자증권 노조와 연대해 대형 증권사간의 합병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부른다며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인수를 반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의 지점수는 200개가 넘는다. 사업 부문도 상당 부문 겹친다. 직원수 역시 3000명에 달하는 대우증권과 1700여명을 넘는 미래에셋증권이 합쳐지면 거의 5000명 가량이 된다. 비용 절감과 업무 효율성을 위해 지점 통폐합과 인력 조정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미래에셋증권 측은 고용승계를 원칙으로 인수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고용안정 보장과 5년간의 독립경영 보장, 낙하산 반대 등을 조건으로 내걸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총파업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미래에셋증권이 인수에 성공하자 대우증권 노조는 즉시 미래에셋증권이 자사의 시가총액(2조2000억원)을 훨씬 뛰어넘는 현금을 마련해 대우증권을 인수하는 것은 무리한 차입인수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노조는 비슷한 수익모델을 가진 대형증권사간의 합병은 자기자본만 증가할 뿐이라며 영업적 시너지 발생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결국 대규모 구조조정이 필연적으로 수반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성과주의 위주의 미래에셋증권과 기수문화 중심의 대우증권이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금융권의 많은 M&A에서는 양사의 조직문화 차이가 합병 후 내부갈등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노조는 “무리한 인수는 시장을 교란시키고 업계의 신뢰를 무너뜨린다”면서 “유상증자 이후 미래에셋의 자기자본은 3조4000억 수준인데 이는 자기자본의 70% 이상을 대우증권 지분을 매입하는데 사용하겠다는 무리한 인수”라는 성명서를 냈다. 또한 노조는 “미래에셋증권의 대주주 적격성에 대한 여러 문제점들을 금융위에 적극 표명할 것”이라며 “회사, 주주, 직원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날 노조를 매각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이후 내년 1월4~6일 조합원을 대상으로 임금협상 결렬을 근거로 총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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