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與野)는 10일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 개최 일정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대법관 공백 사태는 당분간 해소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박상옥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 가운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에 동참했다는 것과 ‘심야·아침 연행’의 경찰 조사 기록에서 유족과 주장이 다른 것이 드러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부실수사, 축소·은폐 논란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자격 논란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자격 논란에 휩싸인 이유는 박 후보자가 일명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하 박종철 사건)’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종철 사건’을 1987년 1월 13일 박씨가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 물고문과 전기 고문을 당한 후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당시 경찰은 박씨가 수사관이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믿기 힘든 수사 결과를 밝힌 바 있다.
박씨의 죽음은 이후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민주화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 사건을 맡았던 당시 검찰은 추가 가담자에 대한 증언에도 불구하고 관련 경찰 2명만 구속 수사하며 사건 은폐 의혹이 불거졌다. 특히 박 후보자는 당시 ‘박종철 사건’의 1,2차 수사팀에 모두 속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 특위 위원인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의원은 박 후보자의 수사 축소 의혹과 관련해 당시 고문 경찰관들의 1992년 서울고등법원 증인신문조서를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고문 경찰관들의 항소심 공판조서에서 당시 구속된 강진규 경사의 변호인은 그에게 “1월20일 서울지방검찰청에 송치돼 박상옥 검사에게 동일(20일) 및 1월23일 두 차례에 걸쳐 조사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강 경사의 변호인은 “박 검사로부터 (두 명만 고문에 가담했다는) 증인 등의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 추궁받은 사실이 있었냐”고 물었고 강 경사는 “(박 검사가) 반금곤이 주범인데 왜 강진규가 주범자로 되어 있느냐고 추궁하였지만 제가 답변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했다.
당시 반 경장의 진술조서에서 박 후보자는 “진술인은 박종철을 조사한 사실이 있나요”, “폭행할 때 합세한 사실이 있는가요” 등 두 차례 형식적인 질문을 했다고 나와 있다.
고문에 가담한 경찰 강진규씨가 신문 과정에서 “반금곤(박군 체포자)이 주범인데 왜 강진규가 주범자로 돼 있느냐고 (박 검사가) 추궁했지만 제가 답변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이 담겨있다.
박 후보자는 공판조서를 통해 1차 수사 때 고문 가담자가 더 있을 개연성을 충분히 알았는데도 적극 수사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반 경장은 박종철씨를 직접 체포한 경찰관으로 1차 수사 때 기소되지 않았다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1987년 5월 ‘고문 경찰관이 더 있다’고 폭로한 뒤 2차 수사에서 고문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 다른 경찰 2명과 함께 구속됐다.
또한 박종철 열사는 2월 13일 밤 11시경부터 행방불명됐다. 고문 경찰관들은 그를 2월 14일 아침 10시경에 연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종철 열사 하숙집 주인은 아침 7시 30분부터 박종철 열사는 보이지 않았고 형사들이 그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당시 경찰관들이 ‘10시 연행은 우리가 잘못 안 것 같고 7시 연행을 한 것 같다’ 고 번복했다. 그러나 박 후보자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넘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박 후보자 측은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의혹은) 수사의 전체적인 진행 상황과 사건 기록의 맥락을 잘못 이해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법인카드 사용 구설수
박 후보자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재직 수행비서 명의의 법인카드를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기식 새정치연합 의원은 박 후보자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으로 일할 당시 “자신의 업무 추진비 내역을 축소하기 위해 수행비서 카드를 사용하는 편법을 썼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자의 법인카드 사용액과 수행비서 명의의 법인카드 사용액이 배로 차이났다.
앞서 국무조정실 법무감사담당관실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국책연구기관의 법인카드 남용과 관련해 올해 1월 8일부터 14일까지 박 후보자가 소속된 형사정책연구원을 비롯한 국책기관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바 있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5일 공개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박상옥 원장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에 따르면, 박 후보는 재직기간인 2014년 1월부터 2014년 12월 30일까지 설 설문 및 간담회 등으로 총 35차례 약 882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반면 박 후보자의 수행비서의 법인카드는 동일 기간에 1123건 2013만원이 사용됐다. 수행비서의 법인카드 사용액 2013만원 중 20건, 약 60만원이 차량 정비와 주유1회에 사용되고 나머지는 모두 음식점에서 사용됐다. 10만원 이상 사용금액이 72회로 총비용은 1862만원이었다.
김 의원은 “박 후보자의 공식적인 일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보자와 수행비서 명의의 법인카드가 식사비용으로만 약 700여만원이 집행됐다”며 “이 금액은 박 후보자가 개인적인 용도로 법인카드를 사용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 의원은 또 “박 후보자가 국책연구기관장으로서 업무추진비를 부적절하게 집행했을 뿐 아니라 수행비서 카드를 사용하는 등 자신의 업무추진내역을 축소하기 위해 편법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대법관으로써 지녀야 할 도덕적 자질에 있어 부적격 사유에 해당한다”며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 사실을 엄정히 규명하겠다”고 지적했다.
◆여야, 인사청문회 개최 입장차 여전

박 후보자의 청문회 개최를 놓고 여야 원내지도부는 합의에 나섰지만 끝내 불발됐다.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는 “이 문제는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대법관은 인권의최후의 보루이고 양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라며 “당초 부정적 기류에서 긍정적 기류가 흐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하는 의원들까지 참여해서 표결로 최종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다음주 이후에 의총을 거쳐 (청문회) 개최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는 “만약 (야당의) 의견 변화가 있다면 절차적으로 의총을 거쳐야 하는 점이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단정할 수는 없지만 3월 중 청문회를 하고 3월~4월 초에는 인준을 마치는 것을 목표로 야당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내지도부의 회동에 앞서 청문회 개최를 두고 변화 기류가 흐르긴 했지만 여전히 새정치연합은 박 후보자의 자격을 문제 삼으면서 청문회 개최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11일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최고 법관의 자격이 없다”고 맹비난했다.
서 원내대변인은 박 후보자의 ‘박종철 사건’의 부실 수사 의혹과 관련해 “박종철 열사가 전날 11시부터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이 경찰들이 전 날 연행했고 고문한 것은 아닌가라고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며 “ 그러고도 수사를 제대로 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또한 “박상옥 검사는 왜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고 진술했냐고 물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진술을 하게 한 사람은 누군지 물었어야 했다“라며 ”그런데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고 당시 진술을 한 경찰에게도, 그것을 지시한 사람에게도 그것을 묻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박상옥 검사는 이 수사과정 속에서 무엇인가를 제대로 밝힐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라면서 “박종철 열사가 전날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전날부터 연행된 것인지도 박상옥 검사는 밝히지 않았고, 가장 기본적인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고 경찰이 진술한 내용의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서 원내대변인은 “(박 후보자가) 말석검사라고 핑계를 대는데, 말석이면 이제 막 시작하는 검사라는 뜻인가. 그런 검사라면 더욱더 확실하게 이 사건을 밝히거나 양심 선언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라며 “양심선언은 둘째치고라도 당시 수사기록에 그것을 밝히려고 애쓴 흔적이라도 남아있어야 했다. 박상옥 후보자는 그런 내용의 수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실로 얼룩진 수사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서 원내대변인은 “(박 후보자는)청문회를 열면 다 밝히겠다고 한다. 지금 밝혀라”라며 “대한민국 대법관 자리다. 모든 것을 숨기고 은폐한 사람에게 어느 누가 대법관이라고 판결받기를 원하겠나. 대한민국의 대법관 자리라서 안 된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새누리당을 향해서도 “추천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도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수사기록을 제대로 제출하길 촉구한다”며 “더 이상 새누리당은 박상옥 후보자를 감싸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은 이런 과거와 행적이 있는 사람을 대법관 시키겠다는 것인지 답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야당이 청문회 개최에 합의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인사청문회라는 민주절차 외면은 민주주의 외면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인사청문회는 법에 명시된 민주주의적 절차다. 민주절차를 외면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것”이라면서 “후보자에 대한 적격여부는 우선 청문회를 개최하고, 그 결과에 따라 표결로 처리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달 17일 신영철 대법관이 퇴임한 이후 대법관 공백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당장 상고심 재판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야당은 국회의 권한과 의무를 포기하고, 민주주의의 절차와 헌법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박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개최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시사포커스 /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