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정부가 기습적으로 전기요금의 한시적 인하 카드를 꺼내든 것과 관련해 전기요금의 주체인 한국전력이 다시 불똥을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전력이 제출한 ‘전기 공급 약관과 시행세칙 변경안’을 지난 18일 인가했다고 밝혔다.
산업부가 인가한 변경안은 주택용 전기요금 부담을 일부 계층에 한해 7~9월 3개월간 줄여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주택용 누진단계 4구간에 3구간과 같은 요금을 적용해 일시적으로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는 방안이다.
이에 따라 전국 647만가구에 1300억원의 전기요금 인하 효과가 예상되고, 4인 기준으로 1가구당 월 평균 8368원(14%)의 전기료를 아낄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산업부는 중소 산업체 8만1000여곳에 대해서도 8월 1일부터 1년간 토요일 전기 요금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으며, 총 3540억원이 절감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전 주주, 전기요금 인하는 오히려 악재
분명 전기요금 인하 혜택을 받는 대상의 입장에서는 그리 크지 않은 혜택이라도 인하 혜택이 주어질 경우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한전 입장에서는 전기요금 인하로 인해 받지 못하는 5000억원만큼을 부담하는 셈이어서 주주들의 반발도 예상되고 있다. 이는 한전의 애매한 위상에서 기인하는 필연적인 문제다.
한전은 1898년 설립된 한성전기회사를 기원으로 하며 1982년 주식회사에서 정부전액출자의 공사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1989년 한국전력공사법이 개정되면서 주식의 일부를 증권거래소에 상장, 국민주 2호로서 증권시장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아 왔다.
전력판매 부문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한전의 최대주주가 비록 51%를 들고 있는 정부(대한민국 정부 21.17%, 산업은행 29.94%)지만 국민연금 6.93%, 미국의 미국주식예탁증서 예탁기관인 씨티은행이 5.01%, 사우디아라비아통화청이 1.63% 등 외국인 지분도 상당하다. 한전의 시가총액은 22일 오후 1시 36분 현재 현대차를 제치고 3위를 기록하는 등 초거대 공기업으로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따라서 전기요금 인하를 단순히 정책적으로 접근해서는 곧바로 주주들의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 5000억원의 전기요금을 인하해준다는 것은 한전으로부터 5000억원의 수익을 빼앗겠다는 얘기나 다름없기 때문에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이 비용이 고스란히 한전의 부담으로 돌아가 최근 실적개선 추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수 년간 한전을 괴롭혀온 손해배상 소송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내놓고 있다. 회사의 가치 하락을 주도 또는 방조했다는 혐의로 주주들로부터 소송이 다시 제기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지난 2012년 한전 소액주주 14명은 정부가 전기요금을 법령에서 정한 총괄원가 이하로 묶어 놓도록 해 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했다며 정부와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을 상대로 수 조원 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김쌍수 전 사장은 피소되자마자 “식물사장 상태나 다름없게 됐다”며 자진 사퇴했다.
◆증권가, 오히려 “인하규모 미미해 호재”

물론 이 소송은 지난 4월 결국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며 법령상의 문제도 없다는 취지로 3년여 만에 원고 패소가 확정됐다. 하지만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 조원 대의 소송이 제기돼 곤욕을 치른 바 있는 한전이 전기요금 현실화의 목표는커녕 전기요금 인하를 택했다는 것에 대해 주주들이 더 크게 불만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더욱이 올해 초 저유가로 인해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하 압박이 거세질 때 정부는 전기요금 만큼은 저유가로 인한 인하 요인이 거의 없다며 유지 방침을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정부가 몇 달 만에 입장을 180도 바꿔 기습적으로 전기요금 인하 방안을 내놓자 지지율 반등용, 총선용 등이 아니냐는 의심마저 나오고 있는 상태다.
정부에서는 한전이 지난 1분기 1조원을 훌쩍 넘는 당기순이익을 올린 만큼 이를 국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애꿎은 이유로 직격탄을 맞는다는 볼멘 소리를 낼 여지도 있는 셈이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이번 전기요금 인하를 오히려 한전에 호재로 보는 시각이 대다수다. 현대증권 김열매 연구원은 22일 “한전의 수입이 5000억여원 감소할 것”이라면서도 “시장 예상치보다 하회하는 인하 수준으로 인해 오히려 한전에는 호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메리츠종금증권 김승철 연구원 역시 “올해 이후 지속될 실적 개선으로 전기요금 인하가능성이 늘 있어왔기 때문에 새로운 악재가 아니다”라고 평하면서 “또한 인하규모 역시 연간 영업이익 규모 대비 미미한 수준”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