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계열사 지분 명의신탁 인정 증거 없다”…아들의 반란 성공할까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6부(부장판사 박인식)는 이윤재 회장이 이정준 씨를 상대로 낸 주식소유권 확인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해당 계열사는 한 때 피죤에서 화물업무를 맡았던 선일로지스틱이다. 이윤재 회장은 이정준 씨가 27세이던 지난 1994년 선일로지스틱을 설립했지만, 발행주식 2만주 중 240주(1.2%) 만을 보유했다.
아들 이정준 씨는 창업자인 아버지보다 30배 이상 많은 7875주(39.37%)를 보유했고 이윤재 회장의 딸인 이주연 씨가 5375주(26.9%), 이주연 씨의 아들이 6010주(30.1%)를 보유했다.
이에 대해 이윤재 회장은 지난 5월 아들이 보유한 주식은 자신의 차명주식이라고 주장하며 이정준 씨의 이름을 주주명부에서 삭제하고 이를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미국에 있던 이정준 씨가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점도 소송 제기의 근거가 됐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이정준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윤재 회장이 아무 권한 없이 선일로지스틱 주주 명부에서 이정준 씨의 이름을 지웠다고 판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이정준 씨가 회사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은 점은 인정되지만 주주명부에 등재된 주주권이 번복됐거나 이윤재 회장이 명의신탁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반기 든 이정준 씨, 재산권 확립 박차
이번 소송 결과가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 확정될 경우 선일로지스틱 지분의 40% 가량은 온전히 이정준 씨의 몫이 될 전망이다. 가뜩이나 아들 이정준 씨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재산권 행사에 나서고 있어 재계는 이번 소송결과가 피죤의 후계구도에 미칠 영향에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앞서 이정준 씨는 누나인 이주연 대표를 상대로 회사에 끼친 손해를 배상하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한 바 있다. 이주연 대표는 이윤재 회장이 청부폭행 혐의로 10개월간 복역하던 당시 대표이사에 올라 경영을 챙겨 왔다.
재판부는 “이주연 씨가 별개 법인인 중국 법인 직원들을 마치 피죤에서 일하는 것처럼 직원명부에 올려 인건비를 지급,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고 판시하고 회사에 4억원 가량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특히 이주연 씨는 법정에서 “동생이 피죤 주식을 13세 때 취득하는 등 실제 주주가 아니고 아버지 주식의 명의상 주주”라며 소송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정준 씨의 주식 취득 당시 이윤재 회장이 주식을 아들에게 증여할 의사가 있었을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 국적인 정준씨는 그동안 미국에 머물며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누나인 주연씨가 회사를 맡아왔지만 이번 판결을 계기로 후계 구도에 변화가 일 거라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여기에 이정준 씨가 보유한 선일로지스틱 주식 역시 아버지의 차명 주식임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이정준 씨의 행보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1년 이정준 씨는 피죤을 상대로 배당금 지급 명령을 신청한 바도 있다. 자신이 배당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해 배당금을 구한 것인데 이윤재 회장과 피죤은 “이정준 씨의 주식은 이윤재 회장의 차명주식이니 배당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며 인천지방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배당금 청구소송으로 이어졌지만 법원은 이정준 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처럼 이정준 씨가 정당한 주주임이 잇따라 법원에서 인정되면서 향후 보유 지분을 활용해 피죤을 장악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정준 씨는 피죤 지분 32.1%를 소유한 피죤의 최대 주주다. 이윤재 회장은 22.3%, 이주연 대표는 15.3%를 보유하고 있다.
◆잇단 논란 이윤재 회장, 또 하나의 악재
이에 창업주인 이윤재 회장으로서는 또 하나의 악재를 만나게 됐다.
섬유유연제로 국민적 인지도를 얻고 있는 피죤은 올해로 창립 37주년을 맞은 토종 기업이다. 1979년 국내 최초로 섬유유연제를 출시하고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해 왔다.
당시 동남합성에 다니던 45살의 이윤재 회장은 1978년 피죤을 설립한 데 이어 다음 해 국내 시장에 섬유유연제 제품을 내놓고 수 십여년 간 피앤지 등의 다국적 기업 및 대기업과 맞서며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윤재 회장의 잇단 돌출행동으로 최근 들어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 때 50%를 넘나들던 섬유유연제 시장 점유율은 20%대로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의 1위도 LG생활건강에 뺏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매출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2008년 1755억원이던 매출은 2012년 916억원, 2013년 771억원, 2014년 697억원으로 10년 새 반토막이 났다. 업계 2위 자리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는 지난 2013년 말 경영에 복귀한 이윤재 회장의 방만경영과 더불어 최근 수 년 간 끊임없이 발생한 이윤재 회장의 돌발적인 또는 부도덕한 행동 탓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윤재 회장은 지난 2011년 말 청부폭행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바 있다. 당시 해직된 이은욱 전 피죤 사장이 해고무효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언론에서 회사를 비판하자 폭력배에게 이은욱 전 사장을 폭행하도록 사주했다는 혐의다.
2012년 말에는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됐다가 100억원이 넘는 금액을 변제해 놓고 이를 회사 측에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이를 철회하기도 했다.
당시 기소됐던 혐의는 이윤재 회장이 지난 2002년~2009년 납품업체 8곳과 계약을 맺으면서 실제 비용보다 거래 대금을 부풀려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총 43억여원을 빼돌린 혐의, 2008년~2009년 사이 허위 회계처리로 법인명의 자금 8억3000만원을 횡령한 혐의, 중국 현지 법인의 리모델링 공사를 추진하면서 공사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차액 5억원을 챙긴 혐의 등이었다.
또 2007년부터 이윤재 회장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중국 현지 법인 벽진일용품유한공사의 인건비를 피죤의 법인자금으로 지급하는 등 40억원에 달하는 회삿돈을 배임한 혐의도 받았다. 다음 해 11월 재판부는 이윤재 회장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징역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윤재 회장이 공소장 변경 과정에서 절감된 6억원 가량의 인건비를 제외한 피해금액 113억원을 변제한 점이 감안됐다.
하지만 지난 4월 이윤재 회장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피죤을 상대로 96억원 가량의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해 ‘파렴치’ 논란이 일었다. 이윤재 회장은 소 제기 이유에 대해 “형사재판의 양형 위험을 피하기위해 부득이 합의금을 지급한 것이라 변제가 자기의 자유로운 의사에 반하여 이뤄졌다”고 밝혔다.
회사가 갚았어도 되는 돈을 자신이 갚은 것이라 회사가 부당이득을 챙겼으니 이를 돌려달라는 얘기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이윤재 회장은 지난 8월 소송을 취하했지만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연초에는 노조탄압 혐의로 고소되는 일까지 있었다. 전국화학섬유산업노조 피죤지회는 지난 2월 이윤재 회장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용노동부 서울강남고용노동지청에 고소한 바 있다.
당시 노조는 이윤재 회장이 노조사무장을 불러내 지방영업소 폐쇄를 둘러싼 노사대치 상황을 정리토록 회유하고 노조와 함께 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노조는 조합 인정과 노조사무실 제공, 전임자 인정 등의 요구 거부, 단체협상 거절 등 부당노동행위로 회사를 고소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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