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수 끝 감격의 ‘역전승’…지역주의 타파, 신뢰·수익성 회복 과제

12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사에서 열린 제23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김병원 당선인은 총 289표의 유효표 중 163명의 지지를 얻어 최원병 회장의 뒤를 이을 차기 회장에 당선됐다.
농협중앙회장은 비상근 명예직이지만 각 사업부분별 대표이사 임명을 결정하는 인사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또한 조합원 235만여명을 대표하는 ‘농민 대통령’으로서의 지위를 갖고 자산 약 400조원과 31개 계열사, 임직원 8800여명을 이끄는 수장이다.
이날 투표에서는 앞선 두 차례의 선거와 마찬가지로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이 벌어졌다. 김병원 당선인은 1차 투표에서 91표를 얻어 2위를 차지, 104표를 얻은 이성희 전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에 뒤졌다.
하지만 이성희 전 위원장이 과반수를 얻지 못해 투표는 결선투표로 이어졌고 김병원 당선인은 결선 투표에서 163표를 얻어 126표를 득표한 이성희 전 위원장을 제치고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김병원 당선인은 당선인 소감을 통해 “세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한국의 협동조합을 제게 맡겨주신 만큼 정말 세계 속에 빛나는 한국농협으로 만들겠다”면서 “제 인생의 가장 큰 영광으로 알고 복지농촌을 건설하는 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임기 4년 중 2년은 여러분 곁에 가 있겠다”면서 “현장에서 여러분과 함께 한국의 농협을 논의하겠다. 감사드린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김병원 당선인은 당선자 발표 후 지지자들과 함께 서로를 껴안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병원 당선인은 오는 3월 개최될 예정인 결산총회 다음날부터 4년간 농협중앙회장으로서의 직무를 개시한다.

이번 김병원 당선인의 선출은 여러모로 많은 점을 시사한다. 우선 많은 사람들은 김병원 당선인의 선출이 농협중앙회에 오랫동안 자리잡은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에 주목하고 있다.
전남 나주 출신으로 광주업고-광주대-전남대를 졸업한 김병원 당선인은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후보로 호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농협중앙회장 자리에 오르며 새 역사를 썼다. 전남 지역이 전국 최대의 농도임에도 과거 농협중앙회장을 영남권이 독식한 것을 감안하면 파란이라 불릴 만하다.
특히 김병원 회장이 앞선 두 차례의 선거에서 지역주의에 기반한 투표 행태에 눈물을 삼켰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당선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씻어내고 전국 농협의 통합을 이뤄냈다는 평가다.
최원병 회장이 처음으로 당선됐던 2007년 선거에서 김병원 당선인은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음에도 2차 투표에서 최덕규 합천가야농협 조합장이 같은 영남권 후보인 최원병 회장의 지지를 선언하면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2012년 선거에서도 김병원 당선인은 최원병 회장과 다시 맞붙었지만 최종 투표일 하루 전 최덕규 조합장이 사퇴를 선언하자 영남권 표가 최원병 회장에게 몰리는 현상이 감지되면서 결국 낙선한 바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주의 구도는 여전했다. 호남 출신 김병원 당선인과 수도권 출신 이성희 전 위원장에 영남 출신 최덕규 조합장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3파전을 이어갔다.
특히 결선 투표에서 패배한 이성희 전 위원장이 최원병 회장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얘기까지 돌면서 일각에서는 김병원 당선인의 3수가 성공할 것으로 예측하기 보다는 이성희 전 위원장과 최덕규 조합장이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가운데 김병원 당선인이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결선 투표에서도 최원병 회장의 영남권 표가 이성희 전 위원장에 몰릴 수 있다는 예측에 김병원 당선인이 초반 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투표권을 행사하는 대의원은 영남지역에 32%가 분포돼 있다. 호남이 21%, 충청 18%, 경기 16%, 강원 8% 등으로 영남지역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따라서 과거 대부분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지역대결 구도 속에서 영남권 후보가 농협중앙회장직을 독식해 왔다.
하지만 이번 김병원 당선인의 선출로 농협중앙회의 지역주의 투표행태도 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김병원 당선인은 앞서 <시사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영남권에서도 그간 영남 지역 출신들이 독식해왔던 것을 바꿔보자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번 투표에서 이 같은 분위기가 실제 투표로 이어졌다는 점은 중대한 변화라는 평가다. 벌써부터 농협 내외부에서는 지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농협중앙회는 물론 농협 전체에도 새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하지만 김병원 당선인 앞에 놓인 농협중앙회의 현안들이 산적한 만큼 극적인 승리의 기쁨에 취하기도 전에 김병원 당선인은 바쁜 행보를 이어가야 한다.
최우선적으로 꼽히는 현안은 농협중앙회의 개혁이다. 이번 선거에 입후보한 후보들이 저마다 농협중앙회의 개혁에 한 목소리를 냈다는 점은 그만큼 조합원들의 농협중앙회 개혁에 대한 열망을 방증한다.
최근 농협중앙회는 최원병 회장을 비롯해 많은 임원들이 비리 의혹에 연루되고 이 같은 의혹이 언론에 하루가 멀다하고 보도되면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상태다. 비리 근절을 지난해 말 검찰은 농협중앙회 비리 사건 수사를 통해 이기수 전 농협축산경제 대표 등 25명의 비리 인사를 재판에 넘겼다.
이에 김병원 당선인의 선거운동 기간 모토가 ‘신뢰받는 농협’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취임 후 김병원 당선인은 조직의 투명성을 회복하고 신뢰를 되찾기 위해 대대적인 수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농협중앙회의 구조 개편도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큰 틀에서 ‘신경분리’로 불리는 ‘1중앙회-2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은 김병원 당선인이 공을 들여야 할 가장 큰 숙제다. 농협은 그간 금융사업 등 비농업 부문이 비대해지면서 구조 개혁을 열망하는 목소리가 커져 왔다. 농축산물 판매·유통처럼 농업인을 위한 경제사업을 소홀히 한다는 지적에서다.
이에 농협중앙회는 2012년부터 ‘신경분리’를 추진하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금융)과 경제사업(농축산·유통)을 분리해 각각의 지주사를 설립하고 관련 사업을 지주사로 넘기는 방안이다. 이 중 금융 부문은 이미 2012년 지주회사로 분리돼 농협금융지주가 출범했고 경제 부문은 오는 2017년 2월까지 분리될 예정으로 사실상 올해가 마지막이나 다름없다. 현재 2012년 신설된 농협경제지주로 경제사업이 점차 이관되고 있으며 절반 가량이 진행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김병원 당선인은 이번 공약에서 농협경제지주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1중앙회-1금융지주’ 체제를 통해 경제사업을 농협중앙회로 다시 되돌린다는 얘기인데 이는 수익성 개선과 중앙회의 장악력 증대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안이다. 다만 이미 주요사업들이 대부분 진행됐고 정부의 공적자금 문제도 걸려 있어 이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평가도 나와 김병원 당선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수익성 개선, 한·중 FTA 대비도 숙제
수익성 개선도 빼놓을 수 없는 김병원 당선인의 숙제다.
농협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은 2014년 5227억원으로 2011년에 비해 2500억원 가량 줄어들었다. 농협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도 주요 시중은행에 비해 낮은 14%대에 그쳤고 자기자본대비 당기순이익률은 1.7%로 주요 시중은행들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농협 공제 수수료와 카드수수료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성장을 거듭하는 경제사업은 흑자전환했음에도 차입금 증가에 이자 부담이 늘고 있다.
김병원 당선인은 공약에서 수익성 개선을 위해 농협중앙회 상호금융부서를 상호금융중앙은행(가칭)으로 독립법인화하고 상호금융 수익률을 5% 이상 나오게 만들어 지역농협에 이익을 환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저렴한 중국산 농산물의 유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 과제도 주어졌다. 그간 관세 인하가 없던 상황에서도 많은 농가가 어려움을 겪었는데 FTA가 발효되면서 어려움이 심화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한·중 FTA 발효 후 20년간 농림업과 수산업은 연평균 생산이 100억원 안팎으로 감소하고 피해액이 2000억원 안팎에 달할 것이라는 연구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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