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가 정부의 시행령에 수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청와대가 거부권을 강력 시사하면서 당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청와대 측에서는 당정협의 회의론까지 흘러나오면서 최악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또한 박 대통령은 이미 국회법 개정안이 넘어오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으며 여야 정치권을 강도 높게 압박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 시행령 수정권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후폭풍이 정국을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의 고위 당정청 협의를 무기한 시키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양상이다. 또한 당내 친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유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하고 있어, 갈등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당내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재논의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통한 재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논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
◆朴 대통령, 당지도부에 폭탄선언?
국회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당청관계가 냉기류가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체제가 구성된 직후 당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여당이 정부를 공격할 경우에 ‘탈당’을 하겠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주목된다.
3일 <국민일보>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15일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김무성 대표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 청와대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야당이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여당이 공격하면 정부는 일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된다”면서 “새누리당이 만약 그렇게 하면 내가 여당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비주류 지도부를 향해 탈당 가능성을 언급하며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되면서 당시 참석자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졌다.
또한 <국민일보>는 이러한 박 대통령의 입장으로 최근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당청 갈등에 대해 “결국 여권은 ‘박 대통령의 탈당이냐’,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냐’라는 두 가지 갈림길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고 전망했다.
이같은 보도에 대해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3일 “논평할 가치를 못느낀다”고 일축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그 발언의 내용을 청와대에서 확인하거나 브리핑하지 않았다”고 보도의 내용을 부인했다.
이와 관련해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대통령이 당을 두 번이나 위기에서 구한 바 있는데 그런 당을 뛰쳐나온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탈당 가능성을 부인했다.
한편 민 대변인은 공무원연금개혁 여야 협상이 있던 지난달 28일 밤 이병기 비서실장이 새누리당에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전달했는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 “국회법 개정안은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며 “설령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국회법 개정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입장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답했다.
이를 통해 국회법개정안을 둘러싼 당청갈등의 책임이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있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힌퍈 박 대통령이 집권 중반을 넘어 3년 차에 들어선 가운데, 역대 정권에서는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고 당청 갈등이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5년차에 차남 현철씨가 수사를 받으며 지지율이 떨어지자, 당시 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총재로부터 탈당 요구를 받아 탈당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임기 말인 2002년 세 아들과 측근 비리가 터지자 당내에서는 쇄신 요구가 빗발쳤고, 결국 당시 민주당의 탈당이 불가피했다.
또한 임기 내내 여당과 긴장 관계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 DJ 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해 구 민주당의 원성을 샀지만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다. 하지만 임기 3년차인 잇따른 재보선 패배로 인해 당내 계파 갈등을 겪으면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졌다. 이에 여야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4년차에는 2006년엔 문재인(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임명하려다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이듬해 대선을 앞두고 2007년 2월 의원들의 집단 탈당이 이어지며 당·청 갈등은 정점을 찍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시 박근혜 후보 측의 세력과 힘겨루기를 하다가 4년차인 2011년 원내대표 경선 때 무너지면서 당내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다만 탈당을 하지 않은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일각에서는 현재 당청갈등을 두고 총선이 겨우 1년 남았다는 점에서 과거의 패턴과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 힘이 실리고 있다. 따라서 탈당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는 전망이다.
◆與, 국회법 개정안 백지화 무게
만약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여당이 앞서 찬성한 것을 번복하기로 하고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여당은 박 대통령의 뜻을 받아들여 야당과의 재협상을 통해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적 요소를 없애는 방안이 있다. 현재로선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아 사실상 국회법 개정안을 백지화시키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어지고 있다. 본회의 상정은 여야 합의로 해야 하는 만큼 여당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진다면 자동 폐기된다.
특히 이같은 경우에는 당청 관계의 충돌은 피할 수 있는 반면 여당과의 관계는 악화될 우려가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위헌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비해 6월 임시국회 ‘보이콧’ 카드 등도 거론하는 분위기다.
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여당 지도부가 수용을 거부하고 재의를 통해 가결시키겠다고 나선다면 당청 관계는 향후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또한 재의결되면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떠나는 사태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이는 김무성·유승민 ‘투톱 체제’가 더욱 강화되고 당청 간의 거리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법안이 부결된다면 청와대와 친박계 의원들이 요구하고 있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청와대의 당 장악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김 대표의 존재감도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새누리당 내에서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3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정부가 (개정 국회법을)받아들일 수 없다고 아주 명쾌하게 결론을 말했다”며 “지금 그대로 정부에 송부되면 바로 돌려보낸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어 “위헌여부도 대통령이 거부할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인데 이것이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킬 우려가 있다는 게 대통령의 판단 아니냐”며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는 거부할 사유가 충분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단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 국회 차원에서 여야 간 머리를 맞대면 정부에 이송하기 전 해결하는 절차가 있다”며 “정부에 이송이 됐다가 다시 국회로 넘어오면 재표결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 정치권에 많은 충격이 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표적인 친박계인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같은날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새아침’에 출연해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최고위원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거부권 행사가 지나치다고 말한 것은 야당으로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런 사례들은 역사적으로 쭉 있어왔다”며 “그것(거부권 행사)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용남 의원도 이날 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좋은 해결방안은 법적 강제성이 없다고 여야가 확인하는 것”이라며 “논란이 지속된다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회에서 재논의를 해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수정을 한다든지 다시 입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무성, 당청갈등 해결할까?
첨예한 당청갈등으로 인해 박 대통령의 탈당설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김 대표는 3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초청으로 서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마친 뒤, 박 대통령이 ‘여당이 대통령을 공격하면 탈당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 내용을 묻는 질문에 “확실하게 말하겠다. 그런 일 없었다”고 일축했다.
또한 김 대표가 당청 간 갈등 해결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앞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전날 국회법 개정안의 본회의 의결 직전날인 지난달 28일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 불가론을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이 개정안에 합의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당청협의가 필요한 지 회의가 든다”고 밝혔다. 이에 유 원내대표는 “어른스럽지 못하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어 메르스 관련 대책 논의를 위한 당정청 회의를 당이 제안했으나, 청와대가 3일 이를 거절하면서 당청 갈등이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김무성 대표는 “우리 당에 친박, 비박은 없다. 오직 우리만 있다”며 당내 계파갈등 진화에 나서면서 당청 관계에 대해서도 “당과 청은 한 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유 원내대표의 사퇴론과 관련해서는 일축하면서 유 원내대표와 청와대와의 관계에 대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김 대표는 강연에서 정부의 행정입법권 침해 논란에 휩싸인 국회법 개정안 사태와 관련해 “좀 의견이 다르다고 회의를 안한다?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개정안에 대해선 “행정부에서 시행령을 만들때 너무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자기들 유리하게 법 해석을 확대 또는 왜곡 해석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런 예가 많아서 민원의 되기도 하기 때문에 국회에서 만든 법의 입법 취지에 벗어난 령에 대해선 시정 요구를 할 수 있게 만들자는 좋은 취지로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당청관계 질문에 대해 “현재 박근혜정권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 과거 정권에도 일방적인 독선을 할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땐 당청간 갈등이 생기는 것”이라며 “거꾸로 지금 당에서 독선한다고 청와대가 불평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청관계는 한몸이다. 이 정권은 박근혜 정권이자 새누리당 정권”이라며 “이런 일(당청갈등)이 생기면 만나서 또 협의하고 처리하는 게 민주주의 발전”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과거에는 대통령이 당의 총재였고, (당청관계가) 일방적이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당의 총재는 아니고, 당의 정신적 지도자”라며 “그걸 존중해서 서로의 관계가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대통령이 한마디 한다고 해서 모든 걸 다 따라가는 상황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시사포커스 / 김지혜 기자]